지구의 중력을 잠시 잊은 사람 이야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오늘 날씨 좋네.” 하고 묻듯이, 아무렇지 않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로션 뚜껑을 덜컥 떨어뜨렸다.
“네? 어디서요?”
“우주에서. 진짜야.
지구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내려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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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도쿄 시절부터 인연이 이어진,
15년째 내 샵을 드나드는 단골이다.
이젠 웬만한 말엔 놀라지 않는데,
그날의 그 한마디는 이상하리만큼 공기를 멈추게 했다.
“점성 공부하러 갔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당신은 지구가 궁금해서 내려온 영혼이에요.’
이제 내가 그 이유를 기억해 내야 해.”
“이유요?”
“응. 내가 왜 내려왔는지, 그 이유.
근데 요즘엔 그게 재밌어.
찾고 있으니까.”
그녀의 미소는 가볍고 투명했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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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사는 게 너무 즐거워. 완전 자유인이야.
안 맞는 사람은 그냥 안 보고,
재밌겠다 싶은 건 다 해봐.
별로면 바로 그만두고.”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게 말이지, 그러다 보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더라니까.”
“비슷한 사람들이요?”
“응. 우주인들.
이 지구 출신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 말속엔 묘한 확신이 있었다.
“다들 조금 느리고, 조금 깊고, 조금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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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었다.
“그럼 진짜로 우주인이라고 믿어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응. 어릴 때부터 그랬어.
학교에서도 늘 겉돌았고,
다수 의견에 잘 섞이지도 못했지.
맞다_ 그런데 말이야.
얼마 전 동창회를 갔는데,
어떤 친구와 마주쳤거든?
처음 서로를 알아봤을 때 너무 반가운, 묘한 기분이었어.
우주인 상견례랄까?^^
“그치그치, 너 옛날부터 좀 달랐잖아.
그래도 학교생활은 참 잘했지.
항상 웃고, 누구 하고도 잘 어울렸잖아. “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그랬지.
“그랬지. 그땐 좀 숨겼거든.
너무 티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
그랬더니 그 친구가 피식 웃으며 그러더라.
“나도 그래.
그때는 다들 인간인 척하느라 바빴잖아. “
둘 다 한참 웃었어.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말했지.
“이젠 됐지 뭐,
이제 진짜 얼굴로 살자. “
그 친구가 마지막에 덧붙였어.
“결국 우린 이 별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깨어난 거야.
이젠 숨길 이유가 없잖아. “
“그 말이 참 재밌더라.
이제는 서로 알아보는 거,
그게 바로 지구 버전의 교신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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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우주에서 온 걸까?
왜 이렇게 ‘지구적인 것들’에 서툴까.
왜 늘 무언가를 찾고 있을까.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느려지는 거래.
우주에선 한순간에 다 알지만,
지구에선 하나씩 배워가잖아.”
그 목소리는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 있다.
삶이란 건, 그 느려짐을 감당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기억해 내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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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그녀가 다시 샵에 왔다.
“요즘도 지구, 재밌어요?”
내 질문에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돌아가기 힘들것어^^.
이 지구에 나랑 코드 맞는 애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거든.”
그녀는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그렸다.
나도 모르게 따라 그렸다.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느꼈다.
나도 그 별에서 온 사람 중 하나라는 걸.
다만, 나는 조금 느리게 알아가는 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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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궁금해서 내려왔다”는 그녀의 말이
내 안의 오래된 질문을 깨웠다.
나도, 어쩌면 우주에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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