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읽은 이야기 하나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학급에서 친구가 많지 않은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아들은 며칠 전부터
열심히 초콜릿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머니의 마음은
점점 편치 않아 졌다.
혹시 하나도 받지 못하면 어쩌지.
상처받지는 않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아이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지는 않을지.
걱정이라는 것은 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향해
먼저 달려간다.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당일.
엄마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아이의 귀가를 기다린다.
멀리서 걸어오는 아들의 모습.
표정은 밝고,
발걸음은 가볍다.
그제야 어머니는
조용히 숨을 돌린다.
아, 받았구나.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머니가 예상했던 대답과는 달랐다.
“엄마,
내가 준비한 초콜릿 수가 딱 맞아서
모두에게 다 나눠줄 수 있었어.”
아이는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가 아니라
나눌 수 있었던 일을
기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은 그동안
‘받는 사람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상처받지 않을지,
부족해 보이지는 않을지,
혹시 손해 보고 있는 건 아닐지.
하지만 아이는
이미 다른 세계에 서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알고,
그 안에서
기쁘게 나누는 사람의 자리.
우리는 때때로
아이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이보다 훨씬 더 자주
불안해한다.
혹시 받지 못할까 봐,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봐,
모자라 보이지는 않을까 봐.
하지만 인생의 어떤 순간들은
얼마나 받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나눌 수 있었는지로
기억된다.
101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
그 아이의 마음도,
어머니의 마음도
모두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닮고 싶어 졌던 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받는 쪽에 서 있던 자리를
조용히 떠나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
한 발 옆으로
자리를 옮겨 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