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늙어서 굳는 게 아니라,

살아온 방식으로 굳어진다.

젊을 때 우리는 참 바쁘다.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을 흉내 내고,

내가 갖지 못한 분위기의 연예인을 동경하고,

유행하는 메이크업으로라도 따라간다.


그렇게 한동안은

‘되고 싶은 얼굴’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다운 얼굴’을 찾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삶도 비슷한 흐름이다.


얼마 전 문득 계산을 해보다가 스스로도 놀랐다.

지난 20년 동안 10만 명이 넘는 얼굴을 만졌다는 숫자.


시간이 얼마나 쌓였는지,

그 무게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이제 나는

얼굴을 볼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느끼게 되었을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존재를 믿게 된다.

마음공부는 물론,

인상학에 관심이 가고,

사주가 궁금해지고,

풍수를 공부하게 된다.


운명을 보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인생의 70~90%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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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얼굴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타고난 골격, 비율, 인상의 ‘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여기서,


남아 있는 10~30%.


이 숫자를 작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생에서 49:51 가능성에서 선택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 2% 차이가,

결국 결과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는 걸.




물론 자기만족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남을 따라 틀을 바꾼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의 얼굴을 흉내 낸다고

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느냐,

내 얼굴의 강점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

그 지점에서

나다운 매력과 아름다움이 터진다.


설령 인생이 90% 정해진 판이라 해도,

남은 10%에서

나다운 결정에 100% 충실하다면,

인생의 흐름은 분명히 바뀐다.




나는 그게 얼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는다.


일례로

사람들은 얼굴의 변화를 노화의 문제로 본다.

그래서 나이 들면 굳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20년 넘게 본 얼굴들은 다르다.


얼굴은 늙어서 굳는 게 아니다.

살아온 방식으로 굳어진다.


참아서 굳고,

버티느라 굳고,

맞추느라 굳고,

애쓰느라 굳는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체념해 버려서.


그래서 얼굴은 나이의 흔적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건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풀어야 할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얼굴은 감정의 결과이자, 힘의 결과.

인생은 선택의 결과이자, 압력의 결과.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원해서’가 아니라

‘밀려서’ 선택한다.


그 압력이 쌓이면

얼굴에도 남고,

인생에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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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제 얼굴을 볼 때

표면적 평가 시선 보다

내면적 성향에서 올라온 표정을

먼저 바라본다.


그렇게 여러 모습이 보이고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그걸 인식하는 순간

손의 힘이 달라지고,

시선이 달라지고,

터치가 달라진다.


얼굴을 만든다는 느낌보다

얼굴을 풀어준다는 느낌에 가까워진다.




우리에겐


아직 쓰지 않은 인생이 있고,

아직 만나지 않은 내가 있다.


나는 그걸 믿는다.


그리고


“얼굴은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지도“


라고 생각한다.


늙어서 굳은 얼굴이 아니라,

살아오며 굳어진 얼굴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내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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