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아서 착해진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내 선택이 착함이었다


자기소개부터.


나는 딸만 넷인 집의 막내딸이다.

쥐띠. 계산 빠름.

틈을 보면 움직이고, 먼저 잘 피하는 타입.


MBTI는 INFJ.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고, 걱정이 많다.


성적은…

승부욕이 있어서 열심히는 했는데

한 번도 2등급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공부의 진짜 재미를 끝내 못 캐치한 채 학업을 종료했다.


여기서 내가 제일 싫은 건 하나.

‘쥐띠 성향이 너무 잘 맞는다’는 사실.


내 어린 시절, 스스로 제일 싫었던 기억은

체육 시간 피구였다.

끝까지 죽지 않는 아이.


무서워서 공도 못 받고,

차라리 맞고 나가고 싶은데

반사적으로 몸이 피해버린다.

죽고 싶은데 못 죽는 나.


실패를 해봐야 한다는 건 아는데

눈치 빠르게 움직여 큰 실패 경험이 없는,

얇은 그릇.


그게 서른까지의 내 인생에서

내가 나에게 붙인 평가였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무 준비도 안 된 채

회사의 큰 임무를 맡고 일본으로 건너온다.


도착하자마자 일이 쏟아졌고

바쁠수록 더 당황했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불안이 커져갔다.


일본어도 전혀 모른 채 중책을 맡은 나는

우선 일본에서 오래 산 사람,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자문을 구했다.


그들이 말하는

“일본인은…”

“일본 사회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는 점점 더 쫄았다.


내가 쫀 게 티가 났는지

자문은 곧 오지랖이 되었고,

눈칫밥은 주객전도됐다.


주경야독 일본어 공부가 이어졌고

어느 날 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옷이 다 헐렁해져

궁상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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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를 유일하게 살린 건

일본 고객들이었다.


내 일본어가 늘었다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한국에서 온 ‘갓 핸즈’라며 귀히 대해주셨다.


그 응원 덕인지,

어느 날 나는 결심한다.


다 떠나고 나 혼자만 남게 되더라도

내 생각대로 한 번 부딪혀 보자.


물론 더 힘들고, 더 외로워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놀라울 만큼 올라갔다.

그 재미로 그 시기를 버텼다.


운 좋게도 일본 지점은 점점 늘었고,

오픈과 동시에 반응도 뜨거웠다.


해야 할 일과

판단해야 할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심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텨갔다.


4년 반.


지금 생각하면 짧은 시간인데

그땐 정말 길었다.



결국 회사와의 입장 차이로 부딪히며

나는 안정된 위치와 수입을 뒤로하고

도쿄 생활을 접는다.


그리고

연고 하나 없는 후쿠오카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나 같은 쫄보가.

나 같은 잔머리 빠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거기엔 나만 아는

세 가지 정도의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윗사람으로서

큰 결정을 내려야 했던 순간들.

회사 입장, 직원 입장, 내 입장이

모두 다른 안건들.


그때마다

내 선택은 늘 나를 먼저 하지 않더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도와

내 양심이 허락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놀란 건 나였다.


내가?

진짜?

어떻게?

이런 용기를?


칭찬보다 먼저

당황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처음으로 신뢰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당시에는 무모해 보였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선택은 해를 거듭할수록

나를 더 나답게 만들고,

행복의 의미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 앞에서는 쫀다.


다만 예전처럼

쫀 티를 숨기려 애쓰지도 않고,

당황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도 않는다.


쫄아 있어도

조금 데워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풀려서 커지는 게 나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 착함은 약함이 아니라,

내가 가진 방식의 강함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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