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어 간다는 것이 이렇게도 진지해지니.

by miel




# 도서관 출첵



어제의 멘탈붕괴를 안고 (인생에게 멘탈붕괴란 흔하고 흔한 일이다) 8시간 근무한 다음 1시간 반 초과 근무를 하고, 글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자 도서관에 간다. 어쩌면 그것은 먼지 같은 시작. 그 시작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새싹. 오늘 회사 업무는 굿굿이었으나 나는 어제의 사건의 영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휘둘리고 매몰되어 버렸다.


터벅터벅 도서관에서 도서 대출증을 만들고 이책 저책을 보다가 철학서적으로 발걸음이 옮아갔다.

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 예술과 철학 사이라는 책을 대여하고 버스안에서 책을 읽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과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이 존재한다. 머리속에서는 숨어있던 상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 인생이 다큐가 되어간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던 멘탈이 책을 읽으면서 좀 나아지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십프로 정도 가라앉는다. 이 매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백을 떠올리고 있었다. 좀 더 분명하게는 이 여백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백이 무서웠을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여백을 의지하고 있을 정도로 변화했구나.


글을 쓰기 시작하고 사유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가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활발하고 웃는 시간보다 꼰대처럼 진지한 시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적어도 몇권 정도는 출간한 작가 같은 이 오버하는 모습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내면의 모습이 이런 모습인건 맞긴 맞는데 글을 매일 쓰다 보니 이런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생활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 깊은 사색이 필요한 사건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서 편안한데, 주위 사람들도 아직은 크게 변화를 감지하고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변화 된 것은 가끔 쑤욱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버리고는 우울에 모드에 빠지는 공허감이 퇴근할 때는 여전히 짓누른다. 퇴근길의 이 감정이 왜 일어나는지 못마땅하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자신을 토닥이고 위로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답답하다.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무엇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에서 이렇게 공허한 것일까...

뭔가... 라고 곰곰하던 중 아! 어제의 사건의 후폭풍임을 느꼈다. 어제의 나에게 만족스럽지 못했구나.

결과보다 나는 자신에게 뭔가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불만감이다.




# 불만족의 본질적 문제점



불만족은 내가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오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었다.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현실에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정말 나는 너무나 부족한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우월감은 어디에서 온건가... 아직도 옛 시절의 라때를 내 세포들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인가.


자존감을 갖자고 한 것이 자만심이 되기도 한다. 직업상 자존감이 굉장히 중요한 마인드인데 아직 제대로 접점을 찾아내지 못해서 오류가 날때가 거의 매일이다. 나는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 모든 점에서 진심으로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좋은 성과에 감사하며 저물어가는 하루를 마감했어야 했다. ...

문제를 분석했는데도 개운치가 않다. 이 신호는 거의 본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 다행히 우월감이 아니고 죄책감입니다



앗 우월감은 아닌가... 그렇다면 죄책감인가... 문제제기가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되어, 실수가 되버린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인가... 정의를 세우려다 관계가 허물어진 건가... 아니다. 애초에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가고 있었다. 단지 도화선이 된 것뿐이다. 그래 그랬어 그랬다. 아 다행이다. 그나마.

본질이 규명되는 시간이 되니 마음이 풀어진다. 차라리 죄책감이 우월감보다 몇 배는 덜 위험하다.


내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쓸쓸하고 고독한 일이다. 그러나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을 하고 있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실수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실수는 있을 수 밖에 없다. 누구라도 완벽하지 못하다. 실수가 서로가 용납되면서 가기를, 이해되면서 가기를 바라지만 툭툭 사건은 터지고 만다.

나의 실수를 인정하기로 한다. 실수는 실천 속에서 발현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수와 본질이 뒤섞인 그 어디쯤에서 발전은 일어난다.




#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경계 어디쯤



동기는 실수가 아니었지만 동기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실수는 언제나 발생한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더라도 타인의 관점에서 잘못이라고 언제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사람의 관점은 셀 수 없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은 언제나 실수는 발생할 것이라고 이미 인정해왔다.


오십쯤 되면 진지해지는 것이 어쩌면 도리에 맞을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답을 찾기란 그것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분별되지 않는 일들을 쉴새없이 처리하고 살아가야 하는 어른은 중심을 잡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럴 때가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이런 과정들 모두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감사할 것이 너무 많고 본질적으로 행복하다. 더 발전하고 싶은 것이다. 삶을 사는 다양한 것들에 대하여 향유하고 느끼는 정도의 고되 들이다.




# 굿바이 철없던 시간들이어 !



밝고 활발하게 웃는 것에 대하여 미련은 없는가...

미련이 없을 수야 없지만 글을 쓰는 작업과 바꾸기에는 그다지 아쉽지는 않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어떤 하루조차 족적을 남겨준다.

아니 더 큰 족적으로 비약하게 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면 이 삶들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것도 모르고 괴로움을 탈출하기 위해 더 행복해 보이는 곳으로 자꾸만 변덕부리고 있었다는 통찰이 밀려왔다.

글을 썼었다면 어디서든 너무 깊은 고통 정도만 아니면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시간의 상념들을 쏟아 부으며 발현했더라면 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의 괴로움은 거의 사라지고 마음이 정화되었다. 굿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