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국 밴클라이번 콩쿠르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출처, 매일경제)
# 누구냐 넌
너튜브의 알고리즘이 계속 임윤찬을 헌팅했다.
썸네일 분위기 역시 최연소 우승, 우륵을 상상하며, 18살 피아노 치는 학생이다
뭔가 기운이 심상치 않다.
게다가 얼굴이 아이돌 연예인 급이다.
와 이쯤 되면 신이 클래식 신곡 듣고 싶어서 이 피아니스트에게 몰빵 하신 거 아님?
나는 먼저 그의 인터뷰를 클릭하였다.
역시 나는 음악 자체보다 그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가 보다.
우륵을 상상하는 그의 사상이 무척 궁금했다.
그는 대단히 어색하고 그러면서도 겸손한 자세로 조심히 움직이고 신중하게 말하였고,
처음인 것 같은 데 처음인 것 같지 않는 자기 스타일로 인터뷰를 해나갔다.
# 진짜가 나타났다
그 인터뷰를 듣고 놀란 것은 콩쿠르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왜냐면 콩쿠르의 수명이 3개월이라는 것이다. 와.
스승의 교육 덕분일까 그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님도 굉장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음악을 들어보았다. 클래식을 수박 겉핧기로 알고 있는 나도 분명 다른 신선함이 다가왔다.
음률이 살아있는 듯한 신선함이었다. 완급조절을 정말 잘하여 지루하지 않고, 맑고 신선하고 영롱한 새소리 같은 모차르트 음악을 하고, 광기 들린 미친 사람처럼 베토벤의 음악은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자신의 스타일이 없고 오직 그 음악이 되어 버리는, 자신이 사라지고 음악 안에 들어가 그 속에서 그 음악을 즐기는 그의 동작 하나하나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섹시한 작품이었다.
그가 슬퍼할 땐 나도 슬퍼지고 그가 즐거워할 때는 나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감정에는 절제가 들어있었다. 절대로 음악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냥 온몸으로 느끼면서 감정 안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그는 그와 음악이 부딪히지 않았다. 하나가 되어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 금세 우리 속을 뒤집어 버렸다.
뭔가 이 세상의 틀을 넘어서 살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한 느낌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 성공을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 성공의 핵심 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돈이다.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고 그 돈으로 강남의 아파트나 요즘 뜨는 용산의 건물주가 되고 싶어 한다.
또 몇 억짜리 외제차와 명품가방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런 모든 것에 가치를 느끼지 않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마치 종잇장 차이인데 자기 영역에서 작품성으로 승부를 보고 그것이 자동적으로 부와 명성이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와 성공을 위해서 자기 분야에 최고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노력하지 않으면 두 방식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둘 다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인간으로서 소중한 연애, 편안함, 쇼핑, 자신의 감정을 포기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피아니스트의 경지는 일상의 포기와 부와 명예의 포기와 몇 단계를 더 뛰어넘고 올라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부와 명성을 위해서 예술을 하고 있다. 임윤찬이 특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너무 귀하고 귀한 예술가의 부류인 것이다. 정말 그것은 고독하고 외롭고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감히 상상하기 힘든 영역 속으로 들어간다. 고독하고 외롭고 지루한 시간이 계속 계속 이어진다. 인생처럼...
인간의 본능을 거부하고 지루한 음악연습의 반복 속에서 순간순간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임윤찬의 내면이 순수하고 맑은 감수성이 있었던 것일 것이다. 그가 음악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합일로 인해 그는 음악이 여전히 지겹거나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안으로 또 들어가고 싶을 만큼 음악 그 자체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것이 이 사람을 천재 중에 천재라는 이름으로 발현되는 이유이다.
뭐랄까 뭔가 진짜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클래식이다. 뭔가 또 한 명의 롤모델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 예술은 저렇게 하는 거지. 예술이 가는 길은 모두 같은 길이다. 글이냐 음악이냐 미술이냐 건축이냐 종목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되고 싶은 초짜인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먼저 나에게 재능이 있는가. 우선 감수성을 갖고 있는 느낌이다. 작품성에 1순위를 두고 있는가. 저렇게 음악에 미친 사람처럼 글에 미쳐서 공부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콘텐츠를 찾고 작업을 하고 있는가. 연애, 게으름, 쇼핑, 편안함을 포기하고 가고 있는가. 적어도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면 말이다. 지금 고독하고 외롭고 지루한가. 며칠 전 올린 글에 나는 글쓰기는 행복할 때까지만 하자고 했었다. 그것은 나의 마인드의 부분이어야 했다. 적어도 적당히 글에 미쳐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임윤찬이 그 정도였을까 하면 아닌 것이다. 임윤찬이 나의 스승이 되어 내게로 와주었다. 글을 쓰며 음악을 듣는 기쁨도 여간 아니었는데 나의 삶까지 각성시켜주고 있다.
저 사람은 진짜 예술가야 라는 감탄이 연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의 음악은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바흐나 베토벤이 저런 경지에서 음악을 했을 것이며 그렇기에 영원히 남을 클래식이 탄생했을 것이다.
# 클래식을 통째로 삼킨 임윤찬
그는 자신의 롤모델을 베토벤 바흐 클래식 작곡가들의 사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검토와 검토를 반복하는 습관이라는 것이다. 어느 예술가이던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사색이라는 것은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핵심 엔진이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기화하는 과정이 바로 사색이라는 과정이고 그 결과로 작품이 만들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임윤찬의 경지는 보통사람들의 재능을 뛰어넘는 무엇이었으므로 클래식을 모르는 대중들까지도 열광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고의 경지는 어렵고 지루한 영역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뛰어넘은 감성의 영역에서 우리는 침투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아노를 치면서 연기를 한다. 우는 듯이 슬퍼하고 감동하고 설레어하고 우울해하고 인간의 모든 감정을 음악에서 표현한다. 그 표현이 피아노를 치면서 녹아들어가 일치가 되는 예술의 극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계속 고전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나오지 않는 클래식을 만들어낸 이들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모든 것을 배우며 가고 있는 것이다.
고전음악 클래식을 통해 그는 천재들의 마인드와 습관을 배우고 그렇게 실천해 온 것이다.
그들을 우리는 클래식이라고 부르고 그 음악들은 영원히 남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산속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는 말에는 정말로 기가 질려 버렸다.
외로움도, 즐기는 것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모두 그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 초연한 사람인 것이다. 18세 청년 피아니스트가 말이다.
보통 18세라는 나이는 인생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 제도 안의 통념을 따라가게 마련이니까.
정말로 보통 그렇지 않은가...
모두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예술성을 내가 실천하고 행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의 깊은 내면의 향연 속에서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 행복이 일상의 평범한 행복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예술가로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평생을 쳐도 다 치지 못하는 피아노 레퍼토리를 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있었다. 세간의 모든 것들과 담을 쌓고 살고 있었지만 그는 완벽히 우리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예술가의 소통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구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바심 내거나 조급할 필요가 없다. 불안하거나 초라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임윤찬의 궤도에서는 이탈했다는 시그널이다.
그는 피아노 외에 다른 것을 다 포기한 것이 아니라 버린 사람이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피아노를 연습한다. 잘하는 것에서 넘어서는 각 작품마다의 사연과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곡의 고통과 상처 그 음악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가 아닌 것 같다는 지적에 ,밤새도록 연습했더라는 스승 손민수 교수의 말씀을 들으며 어떤 길을 보는 느낌이었다. 초보적인 단계에서 테크닉이 생기고, 테크닉이 생기면 당신의 그 무엇에 정신과 마음과 사연을 담아 그 마지막엔 혼을 담아야 우리가 지금 임윤찬을 보고 감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클래식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클래식의 거장들의 감수성, 그들의 삶, 그들의 예술을 통째로 삼켜버린 피아니스트인 것이다. 한 가지를 제대로 얻으려면 다른 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버려야 한다. 둘 다 하려면 지금은 보통의 영역도 안된다. 지금은 재능으로 승부를 거는 천재들이 너무나 많다. 아.. 임윤찬의 경지에 오르려면 무엇을 더 버려야 할까...모르겠다...아마 음악 말고 다른것은 하지 않고 살고 있을 것이다.
임윤찬은 뉴욕에서나 한국에서나 세계 어디에서도 산속에 있는 것처럼 살아갈 것 같다.
# 순수한 사람은 세상을 정화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콩쿠르에 나왔다는 말에 그의 예술을 현실을 잘 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술가들이 가끔 현실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그의 예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소외된다. 우리는 그를 볼때 작품만이 아니라 그의 사상,삶 까지도 예술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서 있는데도 현실에 착실히 뿌리내리고 있다.
무릇 예술가는 저래야 되지 않나라는 표본을 보는 듯한 경외감까지 느껴졌다. 생계를 무시하지 않고 주변에 민폐도 되지 않으며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예술가. 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최고의 영역에 이미 서 있는데도 자신을 겸허히 현실에 뿌리내리는 그 태도의 삶은 예술가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 점에 임윤찬을 사랑하게 되었다.
임윤찬의 마인드와 재능, 태도, 인성 벌써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고, 모든 기능을 활용하되 마음은 아주 단순히 연주하는 음악을 작곡가의 마음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거기에다가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과 최고의 몰입력으로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예술은 그 사람이 그 작품에 얼마나 미쳐서 하느냐에 따라 그 진정성과 성실성 속에 최고의 경지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임윤찬은 관객도 의식하지 않는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작곡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느끼는 작곡가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의식에 몇 시간씩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감정을 우리에게 느낄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왜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 지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갖는다.
인간의 그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영혼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우리 안에 무수한 감수성들이 잠재되어 있다.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내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잘라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마음속에 나쁜 생각을 품으면 음악이 정말 나쁘게 되고,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연주를 하면 음악도 정말 진심이 느껴지게 되는 게,
음악이 정말 무서운 점이기 때문에...
- MBC 인터뷰 중에서 , 임윤찬
감정은 오직 작품에게만 쏟고 다른 무엇에게도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그 몰입과 단순함.
나도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다.
성공이 아니라 작품에 몰입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휘둘리다가 지쳐 순수한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이 예술이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예술이 속세에 물들어 있으면 예술을 순수를 잃는다.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본질로 회복시켜 준다. 아주 잠시라도 말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변해 있는가. 다시 돌아본다. 조금이라도 회복한다. 인생이 예술이 된 사람은 세상을 정화시켜준다. 그것을 우리는 선한 영향력이라고 한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모든 것에서 초연한,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은 우륵의 정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21세기 바흐와 헨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밤에는 임윤찬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