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한계를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는 경험이다. 그렇게 되면 허황된 이상 속에서는 더 이상 헤매지 않을 수 있으며 허세를 부리게 되어버리는 불상사나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사건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부끄러운 문제점에 대하여 최근 몇가지를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었고 어느정도 인격적으로 차원이 높아졌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를 착각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선 나는 정말로 성급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발전적인 관점에서 보면 빠르고 신속하다. 정확하기까지 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완벽주의까지 있는 편이긴 하지만 나의 재능은 그 정도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너무 빨라서 실수할 때가 많았다.
문제적 관점에서 보면 그래서 두 번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마우스도 두 번 이상씩 클릭하는 경우가 많아 실장님이 한번 이상 누르면 작업 속도가 더 느려진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맺고 싶어 하는 심리가 너무 강해서 글을 이틀에 나누어 써본 적이 피치 못할 일이 있지 않으면 하루를 넘겨서 발행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 성급한 성격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끊고 맺기를 너무 빨리 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상대를 보는 나는 이상적인 인간의 어떤 모습을 추구하였다고 자백한다. 지금은 거의 끊고 맺기를 하지 않는 편에 속한다. 오히려 처음 인간관계를 시작할 때보다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졌지만 어긋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 지금에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인간관계의 어느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관점으로 서로 만나고 지나치며 시간이 흐르듯 더불어서 흐르고 있다는 개념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나에게도 똑같이 타인의 모습이 있고 누가 누구를 판단할 수 없이 도찐개찐이라는 깨달음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그런 식이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비판을 받으면 불쾌하며,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며, 화가 나면 분노하고, 피곤하면 짜증이 난다.
단지 인간의 정신수양의 정도에 따라 자기감정을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않느냐, 컨트롤을 얼마만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그게 단지의 차이의 차원이 아니다.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 바로 인내라는 어려운 단어이다.
물론 인간의 더 깊은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사람마다 다른 반응 체계를 갖는다. 개인의 유전적 성향과 과거의 경험적 총체가 결합하여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 가며, 자기 철학과 가치관의 틀을 형성해 나가며 자기 정체성이 완성되어, 무수한 많은 인생의 길을 매일매일 결정하며 살아가기에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래서 정신적인 영역에 더욱 편중하는 것이 인내를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른 것에 집중되어 있으면 인내는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간 인생을 살아보며 다양한 계층의 약 20년간 상담직을 하며 사람들은 만나온 생각은, 나와 똑같은 사람을 한 명도 만난 일이 없으며 비슷한 가치관으로 만나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부딪히는 것은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똑같은 말도 어떤 사람에게는 웃음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쾌함인 경우가 무수히 많다.
각자의 열등감과 트라우마 그것의 반증으로 점철된 우월감 등등.. 그래서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부딪힐 일이 없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오히려 서로의 가치관과 성향의 차이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사건은 이런 나의 상식의 밖에서 가치관 밖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곤 했다.
나 역시 그 정신적인 영역 어느 부분에 있을 문제로, 내가 옳을 수 없고 내가 다 틀리지도 않으며 어떤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 차이가 존재하며 합일되지 않는다. 영적인 영역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르다. 그래서 깊은 이야기를 계속 지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래서 깊은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인생에 쉽지 않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내게 돈이 몇십억이 있는 것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 절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누구라도 알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축복, 어쩌면 행복, 어쩌면 행운이다. 결국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철저히 인정한 전제속에서의 만남과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며, 그와중에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 이른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친구라는 존재는 인간이 가장 갈망하고 원하는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은 공감속에서 존재를 인식한다.
20대와 40대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들이 많다. 20대에는 한없이 꿈을 꾸어야 하며 40대에는 자신의 현실에 맞추어 비전을 설정하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20대에는 밤새워 토론을 해도 다음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지만 40대에는 점심을 먹어야 하는 12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배가 너무 고파서... 절대로 그 무모한 일은 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세대의 차이는 체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의식차이는 심화된다. 무한대일 것 같던 체력이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 40대에 온다.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 자신의 한계가 보이는 사람과 대화가 통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차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모든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40대는 20대 때의 자신을 생각하며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20대는 아직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나의 단점을 글로 쓰는것은 관심사가 단점을 향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쓰게 마련이다. 정리를 하자면 나는 성급하고 어쩌면 조급하여 인내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인 영역의 확장을 통하여 인내를 이루어내려고 시도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오늘도 일희일비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평정심을 갖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참을 노력하고 살아왔으나 재미가 없어졌다. 기뻐도 안 기쁜 척 ,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사는 게 다그런거지 하며 살아가는 것은 정신적인 영역에서 요구되는 관점이지만, 현실에서는 눈곱만큼도 재미없는 삶과 사람이 된다. 큰 문제는 인내하면서 일상의 과하지 않는 선은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것에 어느 정도 설득되어 버렸다.
역시 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정신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체력이 정상궤도로 올라오자 컨디션이 회복되고 이성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좋은 감정이 유지되어 일에 있어서도 좋은 성과와 좋은 인간관계가 유지되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그러나 한계를 지닌 아주 복잡함의 끝을 달리는 정신적 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