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겨우 살아가는 방법
작가 승인을 받은 것은 내게 분명 행복이다. 꿈꾸던 소원을 이루는 첫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공부하던 학교에 합격, 복권의 1등 당첨, 대기업 입사에 비할 수가 없다. 짝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사랑하게 된 것도 비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만큼 글은 내게 절대적인 삶의 부분이다.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글을 쓰기 때문에 세상에 겨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감성주의 자기 때문에 그런 거란 생각이 든다. 세상의 체계와 다른 체계를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감성주의자로 태어나지만 세상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버리고 계산적이고 이성적이고 자본주의적으로 변화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성주의적인 성향을 사랑하여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삶의 형태와 모양을 만들어가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비빌 언덕이 없어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의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어떤 것들을 버리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끝내 버려지지 않고 평생 뒤따라 다니는 미련, 소망, 아쉬움, 회한, 우울로 남아 삶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빛을 비추면 고개를 들고 일어서서 시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행복을 찾아서 버렸던 것들이 바로 행복의 본질이었음을 깨달으며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진짜 나로 사는 것 말이다. 인생의 행복은 그렇게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나의 내면에서 나온다. 신이 주신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 사실 행복이나 불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에 환경, 조건, 의지가 준비되지 않으면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조건, 의지가 준비되기까지 나도 모르게 경험치가 상승해가고 환경이 변화하고 조건이 만들어지고 나의 미약하였던 바램이 강한 의지가 되기까지의 나이라는 시간 속에서 조성되어 온 것이다. 이때 만들어낸 상황은 정말 큰 행복이다. 처음부터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그것은 나에게 행복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전쟁을 치르지 않는 21세기에 태어난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지 않듯이 말이다. 행복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졌을 때 행복이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 행복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는 그야말로 하늘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도파민이 사라지면서 설렘도 사라질 즈음 겪게 되는 이별은 안정감과 유대감을 모두 내 인생에서 삭제시켜버린다. 가진 것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다. 그건 인생의 어리석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돕기 때문이다.
정말 기쁜 소식은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50대 후반 60대로 접어들면 인생을 깨닫는 시기인 듯 꽃을 보고 행복해하고, 자연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행복을 추구하는 시선이 자신의 물질적 조건에서 정신적 조건, 그다음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으론 옮겨간다. 지금 내 주위를 둘러보라. 냉장고에는 김치와 여러 가지 반찬거리 혹은 과일과 밀키트가 있을 것이다. 너무 더우면 에어컨이 대기하고 있고, 선풍기는 하루 종일 돌고 있으며, 추운 날씨에는 난방기능이 우리를 보호해준다. 마음만 먹으면 동네에 가서 순대, 떡볶이를 먹을 수 있으며, 여행을 가고 싶으면 예약을 하고 떠나면 된다. 돈이 없어도 우리는 등산을 하며, 큰돈이 없어도 세끼를 먹을 수 있다.
# 인생이 고행의 바다라고 생각되는 이유
물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나라엔 그래도 어느 정도 복지가 되어 있는 듯 하지만 너튜브를 보면 해외에 상황은 굶어 죽어가고 있고, 치료비가 없어 죽어가고 있는 이들이 절반은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복지시설과 생계 조건이 더 좋은 곳도 몇 군데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살률 또한 높다고 하니 사실 인생은 솔직히 말해서 고난의 바다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서 고통을 느낀다. 울면서 태어나는 이유가 참 신기했는데 태반으로 숨 쉬던 방식을 호흡으로 숨을 쉬게 되면서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라는 존재가 자식의 고통을 막아주거나 덜어주며 보호하지만,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은 학업이라는 고통과 싸우기 시작한다. 무엇인가를 노력해서 성취해야 하는 것인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노력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른다. 편하고 싶고, 자고 싶고, 놀고 싶고 등등의 것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사랑이라는 환상을 꿈꾸다가 몇 번의 죽을 것 같은 이별을 경험하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시험을 보고 불합격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겨우 합격한 직장은 인간관계로 고민하다가 사직서를 내기를 반복한다. 결혼을 하면 행복이 시작되지만 고통도 시작된다. 서로 맞지 않는 성향을 맞추기 위해 싸우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인생을 비로소 맞본다. 그리고 내 인생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아이를 위한 삶이 시작되고, 평생 아이들을 위한 고민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간단히 인생을 짚어 봐도 고통이 아홉이고 행복은 한 가지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생의 행복을 논할 수 있는가...
#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것이지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행복은 절대로 남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나 스스로는 더욱 행복을 방해하는 존재다. 이 세상에 나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는 없다. 행복을 갈망하는 내 안의 마음이 모든 것을 평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굉장히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기필코 행복해지겠다는 굳은 의지 말이다.
그 의지가 모든 것을 동전의 다른 면으로 바꿔준다. 그리고 긍정적인 동전의 한 면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의 삶을 이끈다. 행복한 사람은 계속 행복해지고, 불행한 사람은 계속 불행해지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행복의 절대적 요소는 희망이다. 지금이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에 더 좋아지고, 나아지고, 꿈이 이뤄질 거라는 희망은 어떤 절망에도 포기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이 실제로 그 사람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낸다. 절망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성공의 척도는 반복, 반복, 반복이다. 그 반복을 유지하는 에너지는 만족감이다. 내 삶 속에 소확행으로 만족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100년 정도 살다가 간다. 우리의 삶은 길지만 또한 길지 않다. 천년에 비해서는 말이다. 처음과 끝을 보고 천체를 보고 내 인생을 보면 크게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죽지 않게 된다거나 천년을 살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을 목적과 결과에 맞추는 것이 과연 효용성이 있는 것일까. 30년 후, 20년 후 행복하자고 지금 불행한 것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목적과 결과가 성공했을 때 우리에게 죽음이 바뀌는 게 아닌 이상은 그렇게까지 모두 거기에 올인하는 것은 좀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도 목적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지향한다. 그것이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하고 시간을 아끼게 하고 운동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뭐랄까 5:5 정도의 비율??
지금에 5할 정도의 즐김을 두고 목적에 5할 정도의 희망을 두는 것이다. 사실 즐기는 것만큼 큰 성과를 내는 마음도 없지 않은가... 조바심, 조급함, 불안감, 성급함 뭐 이 같은 단어들은 내 사전에 삭제시키는 것이 좋다. 일을 그르치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느긋한 게 좋을 때가 더 많다. 이 감정들 중에 하나인 신속함이라는 타이밍은 빼면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마음속에 이미 이런 감정들이 있다면, 이 신속한 타이밍은 아무리 삭제시켜도 내 안에서 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에 그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즐기는 상태에서는 타이밍이 더 잘 보일 수가 있다.
# 저의 행복을 소개합니다
지금 밖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가 온다. 베란다의 이불이 젖었다. 다시 헹구기로 했다. 아델의 리스트를 플레이했다. 나로서는 비 오는 날이 너무나 좋다. 나와 세상이 같은 궤도에 있는 느낌이 드는 소중한 시간이다. 다른 이들은 비가 와서 곤란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비가 와서 곤란한 직업을 겪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해가 뜨는 날이 좋을 것이다. 그런 것이다. 나의 행복은 여기에 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무시하거나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나의 삶을 위하여, 나 자신을 위하여 비 오는 오늘도 나는 행복하며, 곧 맛있는 점심을 먹을 생각에 행복하며, 어제 못 본 빅마우스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며, 너튜브를 통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행복하며,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이 더 깊어질 수 있어 행복하다. 매일 글을 쓰기로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하며, 며칠 후에 소울메이트를 만날 약속에 행복하며,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을 수 있는 자유에 행복하며, 조금씩 천천히 보이지 않게 더 나아지는 나의 무엇들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가장 행복하다.
주어진 것에 대한 만족감으로 감사하며 지내는 행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한 것이 늘어난다. 나는 너무 불행함을 느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쓸 에너지조차 고갈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인생엔 신이 주시는 반전은 반드시 있다. 여러 번 경험하였다. 인간의 한계를 신이 돕는 순간 바뀌는 인생의 반전. 물론 그 인생반전은 내 노력과 함께 유지된다. 인생의 진리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고, 적성에 맞는 직장에 가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며, 부부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고, 자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이라는 말을 사랑이라는 말로 바꾸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행복이라고 명명하여도 불행하다면 그것은 혹시 바꿔야 하는 인생의 부분일 수도 있다.
# 주욱 저는 행복하겠습니다
내게도 한 가지 불행이 있다. 나의 한계, 나의 환경, 나의 조건들이 있다. 다른 이들은 다른 불행이 있다. 같은 종류의 불행이 아니어도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향상성이 있기에 불만족, 불행을 당연히 느끼고 살아간다.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이기도 할 것이고, 장애상태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자신의 행복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한탄하실 수도 있다. 감옥에서 책을 집필하고 책을 읽었다는 바울, 마틴 루터 킹, 윤동주, 백범 김구, 이승만, 신영복, 김지하, 황석영, 김대중, 유시민 등등 수많은 위인들과 온몸에 화상을 입고도 교수가 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김지선 님, 팔과 다리가 없는 데도 정말 행복하다며 강연을 다니는 닉 부이치치님 의 모습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를 말하여 준다.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오롯이 느껴지는 감정 속에서 그것을 향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나는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라고 여긴다.
단언컨대 나에게는 아홉 가지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은 당신이 보기에 불행의 전초전 일수도 있을 것이고 그냥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 명명하였다. 누가 봐도 불행한 것들에서도 다른 면의 행복을 나는 선택하며 가는 것이다.
나는 소중한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다그치지 않으며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가장 귀를 기울여, 최대한 그의 의사를 반영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나이다. 그와 나는 척을 두지 않으며 가장 긴밀하고, 밀접하고, 화평하다. 사실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어떤 운명이 나를 어디로 데려 간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미래의 5할은 내 노력의 대가와 더 나아지는 기쁨의 목적과 신이 주시는 인생반전을 가능성을 두기 위해 설정하였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는 허상이다. 나로서는 기도하면서 염원할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 나는 행복해서 100년 정도를 살았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