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싶어졌다. 행복해지고자 노력하지만, 상황에 계속 휘둘리는 자신을 보면서 무언가가 제대로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에 행복의 순위가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는 것이니 말이다.
가장 많은 주요 요소는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직장 말고 나를 괴롭히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범은 직장인데, 나 역시도 쉽게 생계를 정할 만한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니 관점을 바꾸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적이 변동되는 것에 주로 감정이 변동한다. 수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계와 직결된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나의 욕망이다. 생계 이상의 수입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더 많은 수입이야 누구나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불행과 행복이 바뀐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가 이미 일어나 엎질러진 물에 대하여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에 속상해하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냥 내 몫이 아니었다고 내 그릇이 부족했다고 교훈을 삼고 지나면 될 것인데 왜 그렇게까지 감정이 일어났던가.
지난달에 실적이 좋았기에 이달도 어느 정도 노력하면 괜찮겠다고 잘못 생각했다. 시류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지난달은 무조건 달려야 했던 달이었고 이번 달은 심리조절을 하여야 했다. 지난달과 이번 달의 고객들은 완전히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었다.
지난달은 고객이 서둘러 계약을 원했고 이번 달은 원래대로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고민하는 패턴으로 돌아선 것을 나는 지난달과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이 자신을 안달 나게 하면서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프라임세포가 된 것이다.
월말이 다 되어 가는 인제야 마음을 비워내니 평안이 찾아왔다. 항상 마음을 비우는 것은 오히려 의욕을 저하한다고 생각된다. 시류에 따라 목표를 정하지 말고 열심히 달려야 할 때가 있고,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다고 그래야 행복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본질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실적이나 계약에 관심을 껐다. 그것은 지난달에도 이번 달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처음에는 어려웠고 지금도 쉽지 않지만,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는 바로 나와 비교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영역에 집중하면 성실하기만 하면 비교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재량에서 충분히 최고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이것은 어떤 것이든 그렇다. 직장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인품의 성장도,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도 나다운 것을 계속 발현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개성 있고 독특하며 비교에서의 우위가 아닌 자신의 성장에 기쁨을 가져와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수없이 되뇌고 자신에게 말하고 해도 또 어느샌가 분위기에 휩쓸리고는 한다. 그러니 계속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고, 자신에 내면 귀를 기울이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밖에 없다.
내 인생의 화두는 행복이다. 쾌락적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내면의 행복을 찾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편견과 행복의 가식과 겉치레를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부자가 행복하거나 건강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않는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나도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행복에 대하여 써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