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외부에서 오지 않습니다

by miel




어느 책에서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행복이 어느 정도는 존재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반드시 행복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루종일 행복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티브이의 드라마에서 혹은 자기 계발서적에서 어쩌면 나의 무한한 욕심이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없는 것들만을 바라서 만들어 낸 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쩠든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하기 싫은 영역이 존재하고, 내가 하기 싫은 일임에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도 하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임에도 계속되는 반복으로 관성화되어 지겨워지기 일쑤인 것이 직업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직업 속에서도 행복은 잠깐 존재하는 것이고 나머지 시간은 지루하고, 스트레스를 가지고 노동시간을, 어떤 프로젝트를 어떤 매출을 성취해야만 하는 긴장을 직업자체는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은 우리의 생에서 가장 행복의 요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감수해야 할 어려움들과 난관들이 인생의 날짜만큼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사랑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며 가장 본성적인 순간입니다. 아마도 그런 자신의 본모습을 보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성취나 목적이 없는 그저 인간의 본성 그대로 표현할 수 있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 시간이기에 말입니다.






행복은 인생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행정적이건, 노동이건 우리의 어떤 노력이 들어갑니다. 행복을 위해서 다른 고된 시간들을 투여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장에서 월급날이 행복일 것이며, 매출을 올린 날이거나, 프로젝트가 성취되거나 하는 그 어떤 순간, 혹은 어느 날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시간은 그 행복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시간이라고 인정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지요. 데이트를 하는 시간들이나 결혼을 하여 신혼여행에 가는 시간, 일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행복감과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 직장에서의 고단함과 힘듦을 인내하고 견디며 가는 것이지요.





고의적 자해를 하는 이들은 어쩌면 이 행복감이 인생에 1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계를 감당할 직장이 없을 때, 세상에 내편은 없고 남들만 있을 때 모든 삶이 불행만이 모여 있을 때 살아갈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했을 때 존재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슬픈 선택을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벗어나야 합니다. 생계를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존재성이 1도 없는 상태보다는 낫습니다. 일 속에서 순간순간 즐거움도 있게 마련이고, 그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도 잔잔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도 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나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변해야 합니다. 외부의 이러한 조건이 갖춰져도 사실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기본적 생존권을 넘어서서 있습니다.






하루종일 행복만을 찾고 있었기에 불평과 불만이 내적으로 가득하지 않았는지, 아마도 그랬던 듯싶습니다. 힘든 시간이 인생에 반드시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각자의 분량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내 인생에 행복은 20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80은 20의 지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 지분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더 작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행복의 지분은 외부의 조건이 아닙니다. 가장 불행할 것 같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찾아낸 행복을 보고 우리는 존경해마지 않습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닉부이치치, 화상으로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했던 김지선 교수 금방 떠오르는 분들입니다.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 데일 카네기


지금 나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과연 정당한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어떤 의식이 주도적으로 나를 리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실력을 나 자신이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아직 훈련기간임을 잊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행복을 위해 훈련기간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훈련과정이든 억울한 상황이든 그 모든 외부환경은 사실 나의 행복과 그다지 연관이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늘 부족감에 시달리듯이, 노력하고 난 후의 주어진 환경에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는 마음은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정말 형편없어도 내가 즐거움을 찾고, 유머로 화남을 날려 버리고, 때로는 무책임하게 잊어버리고, 미래의 나는 지금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며 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허황된 생각이 아니라 행복을 만드는 각자의 방식이므로 그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는 이유는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은 미래를 낙관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겠죠. 포기는 행복의 반대급부를 만들어냅니다. '안 될것 같아' 라는 생각이 내 의식 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나의 좁은 의식 수준으로 단정 짓는 것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 지금 내가 와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떻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내가 되고 싶은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나를 위해 오늘 하루 알알이 채워가는 것입니다. 미래가 아닐지라도 미래가 아주 잘 돼 것이라는 낙관으로 행복한 오늘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비관하고 포기하는 것 오늘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성실히 행복을 위해서 희망을 보며 살아간다면 그것 만으로도 정말 충분합니다.

인생은 꽃길만 걸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시선은 꽃만보고도 인생을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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