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by miel




신기하지만 50이라는 나이가 되며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어졌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도 원하는 삶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청춘의 시기의 경험과 실패과 고뇌와 방황과 실수와 문제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직장이 안정이 되었고, 글을 쓸 수 있고, 소중한 친구들이 있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느끼니 50이 되기 전날이 되었다.


일이 잘 되고 안되고에 심리적 영향을 받고 싶지 않고, 또 받지 않게 되었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을 정리하였다. 그저 글을 쓰는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기로 하였다.

인간관계에 더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에 맞출 뿐.


삶에 대하여 어떤 욕심과 목적을 갖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있다.

적어도 50대는 그렇게 살아봐야 겠다고 생각한다. 인정욕구에서 벗어났다. 야호!!!!!!!!!!!

그저 순수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것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시점에 이르렀다. 나의 마음은 너무나 평안하였고 마음의 기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그런 나를 실험하고 있었다. 감성적인 탓에 누구보다도 감정의 기복이 있는 편이었는데 그것은 나에 글 쓰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감정의 기복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많은 반응점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인간관계에서는 타인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난 후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험하듯이 지냈왔고 이젠 가능해졌다.

타인의 감정에 분노에 미움에 대하여 타인의 입장에서, 나도 그러했듯이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이 먼저다. 똑같은 감정선을 갖지 않고 그저 관망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 대화와 합의는 훨씬 빨리 진행된다.






객관화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일에 대해서도 관망하듯이 처리하면 언젠가는 꼬이거나, 답답한 문제도 풀리는 것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은 객관화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은 객관화과정이다. 주관이나 감정이 실리면 원인분석도 본질에도 다가갈 수 없다.

역시 대안, 방법도 지혜로울 수 없다.


욕구나 목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무엇을 할까에 집중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에서 이타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기중심적 이타적이었던 적도 많았음을 알았을 때이다.






다른 사람 앞에 빛나고 싶던 시기를 지나 들에 있는 들풀처럼 어느 산중에 있는 나무 한그루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인간 누구나에게 있는 제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 나에게 왔다. 들풀향기를 맡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 풀을 베었을 때 향기를 기억한다.


무엇 때문인지 그런 냄새와 어스름 저녁에 볏짚단을 태운 냄새는, 자연에 대하여 나서거나 뒤처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매료되어가는 시점이다. 그래서 퇴근하는 길에 그 냄새가 나는 시골길을 일부러 지나가곤 한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도시에서 얼어있는 긴장이 한순간 풀어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아직 나에게 해결되어야 할 것은 많다. 문제해결을 빨리 하려는 습성을 벗어나야 한다. 수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 우리는 매일 매일 성장하고 있다. 단지 더 많은 발전의 욕구에 성장하는 내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천천히 오롯이 삶을 느끼며 살아가길 기원한다. 성공하지 않아도 좋아. 넌 행복하니까 말이야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이 시간이 나에게 왔다.

Welcom To My Life !!!!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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