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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Aug 15. 2023

사랑할 수 있는 실력




사랑은 두 가지가 있다. 엔조이식 사랑과 소울메이트적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그렇듯 삶속에서 성찰과 반성을 하며,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에 답을 채워갔다. 물론 그것은 아프지만 최영미 시인의 글처럼 '상처도 산자만이 걸치는 옷'이라는 마음은 가장 밑바닥에 안전장치로 걸려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사랑이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인생에 대하여 너무나 쉽게 생각했던 20대의 생각을 지금에 돌아보면 얼마나 가벼웠는지 또한 인생은 얼마나 깊고 심오한 우주와 같은 내용을 품고 있는지에 겸허해지게 하였다. 또한 인생에 정답이 없는 이유는 각각의 상황별로 팩트와 객관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며 그래서 수많은 책이 넘쳐나는 데도 우리는 또 글을 쓰고 있는 것일 것이다.



어렵긴 하지만 처음 사람을 만나는 관계에서는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성적인 사고는 연애하는 내내 중요한 태도이지만 특히 처음 만날 때는 내가 함께할 수 없는 조건이 있는지를 대화나 만남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면 관계는 블랙홀로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파악이 안 된 채 관계가 종료되어 버리면 다음에 다시 문제를 반복하게 된다.





나는 정체된 발전이 없는 그러한 어떤 것들에 대하여 약간 난감해하는 느낌이 든다. 인생을 살았는데 계속 어린아이 같은 상태를 갖는다면 그것에 대한 피해는 가장 먼저 자신이 받는 것이다. 물론 나를 만난 상대도 피해 아닌 피해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안정감과 반복은 같은 어원일까. 안정감은 발전을 껴안고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안정감은 굉장한 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이다. 그것이 반복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견고한 반석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과 의지의 작용으로 시작되고 풍성해진다.



사람들은 상처가 두려워 가벼워진다. 상처란 무엇인가 마음을 주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엔조이식으로 사랑을 한다. 상처받기 싫고 설렘과 즐거움만을 느끼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그대로 발현된 사랑법이다. 엔조이식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사랑하고 쉽게 이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 저변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랑하려고 하는 의식이 기준이 되어있다.



사랑이 힘든 이유는 상대의 생각과 내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나서는 안 되는 관계인가? 나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잘 맞아서 싸우지 않는 관계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사랑은 타인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소유를 기반으로 하므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간과 부딪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내가 다른 사람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이 들게 되자, 나 또한 엔조이식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 것이다.



물론 대다수는 엔조이식과 소울메이트식의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방황하며 사랑을 전개해 나갔겠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소울메이트식 사랑을 당찬 포부로 시작하였어도 기다리지 못하고, 의심하고, 오해함으로써 엔조이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울메이트 근처에도 못가보고 종료된 사랑이 많았다. 사랑은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합희해나감으로써 만들어가는 서로간의 고유한 스토리로 엮어진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혼자인 이유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 성향과 함께 소울메이트식 사랑을 하지 못했던 즉 사랑의 실력이 부족했던 이유때문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싸우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 저변에는 누구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와 내가 일치되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사랑의 특성이다.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이 같아서 서로 동일한 교감을 나누고 같은 마음을 갖고 싶은 것이 사랑의 최고의 희열인 것이다.






그런데 다양성, 개인화 이런 화두가 가장 중요해진 사회에서 어찌 상대와 내가 아주 쉽게 일치할 수 있을까. 서로의 생각을 깊게 나누고 토론하면서 어떤 부분은 인정하고 어떤 부분은 존중하면서 가는 것이다. 사랑에 최고의 문제는 감정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결정적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방어기제로 작용하면 관계는 사랑하지 않음으로 오해하고 흘러가 버린다.



사랑하지만 이 문제 때문에, 사랑하지만 저 문제 때문에 라는 것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시간을 추억으로 정돈하며 끝을 만난다. 사랑은 자유니까 어떤 방식으로 하든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그렇다. 내가 이 지면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랑에 실력을 갖추면 좀 더 상처를 많이 겪지 않고 소중했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때문이다.



서로가 가장 소중한 상대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기준.

문제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내가 문제가 많듯이 상대도 문제가 있다는 인정.

시간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사랑하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중심.



그런 마음이 있다면 소중한 관계를 놓치고 후회하거나 방황하면서 또 누군가를 잊지 못해서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주는 문제를 만들어 버리는 상황은 조금 덜 생길 것이다. 상처를 받을 각오를 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갈 각오와 비슷한 맥락이다. 인생은 상처의 연속이며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상처를 인정하고 그 상처를 최대한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며 또한 상처를 받았을때 누구라도 그러하다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 상처가 사랑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최악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연애를 많이 할 수록 연애를 잘하게 되는 것도 일면 맞는 말이다.



사랑은 실력이 필요하다. 연애의 스킬은 사랑의 실력의 일부분이다. 사랑의 진짜 실력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마음을 지키려는 힘을 말한다. 상대가 부족해도 나도 부족하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점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한 번 마음을 주기로 한 사람에 대한 의리이며, 순정이다.



과연 이런 사람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실력이 엄청난 사람은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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