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으로 성공하지 않았지만 나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간다. 예술가로 성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지도 않고 나의 사고방식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누구와도 통하지 않는 어느 정도 이상은 교감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지는 초등학교 때부터였고 지금은 그것을 인정하는 나다움의 삶을 살기 위해서 길을 찾는 여행자이다.
나는 페이크를 가장 싫어한다. 오히려 본질을 추구한다. 그 현상의 본질.
그러므로 행복하지 않는 데 행복을 포장하는 웃음소리나 자아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어떤 만족도 나는 만족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오로지 만족을 위해서 자족을 위해서 나아가는 경로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며 내 옷이라고 생각한다.
삶 자체가 예술이 되고 싶은 인생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멀리 떨어진 환상적인 낭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시간과 상황 속에서의 많은 상념들이 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시장통에 앉아 있는 고사리나물을 팔아 생활비를 버는 할머니의 거친 흙과 같은 손가락도 인생이며 예술이다. 그 가치를 얼마나 어떻게 직관과 통찰을 가진 표현을 하였느냐 아무런 가치없는 물질세계에서의 생계로 표현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모든 순간이 나에게 예술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직장에서 살아가는 전쟁 같은 삶도 인생을 경험하고 연륜이 생기는 극적인 시간 들이며 치열한 순간들이며 나의 삶을 만드는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다. 과연 이 직업이 천직인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곳이기도 하다. 삶은 때로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으로 이동시키고는 한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고민과 고통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다른 더 나은 길이 없다고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인정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편안하고 내 옷으로 느껴진 케이스였던 곳이 직업이었다. 역시 현실적인 면에서는 약한 사람이다.
집에서의 삶은 수많은 경험의 의식들을 정리하고 정돈시키고 정제시키고 플러그를 빼는 공간이며, 또한 모든 삶의 조각들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 어린아이와 같을 때는 낭만이라는 것이 누추한 것을 외면하는, 눈에 보기에 아름답고 화사한 것을 세상은 늘 생각하게 했고 그것은 늘 내게 현타가 오게 했다. 삶이 그렇게까지 화려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말이다.
누추함마저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온 전체를 껴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주일교사의 활동과 성서강해의 시간은 성서를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내 삶의 방향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는 영적인 영역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삶의 기준점은 예배당이다. 쉴 새 없이 흔들리고 휘둘릴 수 있는 인생의 길들 속에서 가장 바르면서 나답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멘토와의 만남 같은 곳이다. 예배당에서 나오면 알 수 없었던 인생의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갖는다. 그 느낌은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나에게서 벗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휴일이 끝나는 날 그런 생각을 했다. 모든 순간이 봄이다. 늘 내일의 사회적 삶이 불편하지만, 또 출근하는 드라이브 시간과 막상 근무하다 보면 다이나믹하게 흘러가서 시간이 또한 즐겁다는 순간을 맞이한다. 매일매일 집에만 있다고 했을 때 삶이 얼마나 무료할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사회적 생산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소비적 인간으로 살았을 때 자신의 무력감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나 지루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삶의 모든 상황과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반응하는 나로 인해 만들어지는 인생의 스토리들을 소중하게 만들어 가야겠다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인지를 순간순간 느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니체의 아모르파티는 자신의 모든 운명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인생에 따뜻하게 웃음 짓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코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함이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행복이란 향수와 같아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 향기를 뿌리지 않고서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발할 수 없다는 글귀는 20년 전에 알게 된 누군가의 글귀였는데 작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자신이 자신의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삶. 그러기에 타인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 소중한 배우자 그런 관점으로 사람을 보면 살아있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서의 말씀이 새삼 더욱 이해된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머리 아프게 사냐고 할 수 있는 삶이 나에게는 가장 나답고 아름다운 삶이다.
그 삶 속에서 나는 어제와 다른 오늘과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은 인간의 생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