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인생을 향하여
물론 나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노력한다. 인생은 경기장이고 나는 플레이어이다. 그리고 결과는 게임의 결과일 뿐이다. 인생의 관점을 그렇게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매사에 너무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성향인 나로서는 디폴트를 정해놓지 않으면 인생이 한없이 멜랑꼴리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사소한 일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나의 관심사는 일상에 있지 않다. 쇼핑이나 청소나 살림도구나 음식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모르겠다. 원래 내가 이런 성향인지 혼삶을 살다보니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갖게 되었는지.
아마도 누군가와 살다보면 음식이나 일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므로 다른 삶의 양식을 갖고 살았겠지만 지금은 효율적이고 여유로우면서도 루틴을 가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시간은 한없이 여유롭고,
직장에서는 십분도 허투로 쓰지 않는다. 직업에 대한 애정과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자 나를 고용한 회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은 일관된 관점이다. 회사를 위한 노력은 바로 나를 위한 노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빠른 업무 처리와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며 업무에 여유를 갖게 된다.
최근에 일어나는 개인사와 회사일들에 대하여 굉장히 경직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자신을 인식하고 바꾸기로 결심하였다. 바꾸지 않으면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의 역량을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일어나는 결과에 대하여 무조건 순응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순응이 아닌 반감이 든다는 것은 기대를 너무 많이 했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다는 주관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또한 욕심이 많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또한 살아보니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것이 맞았다는 경우도 많이 일어났고, 지금 당장의 결과가 아닌 나중에 제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늘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빨리 성과를 받고 싶은 성향이기 때문에 늘 설익은 밥을 짓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게다가 인생은 늘 실패라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단함속에 간간이 들어있는 행복이라는 오아시스처럼 인생이란 늘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과정의 반복을 통하여 무엇가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초연함을 갖기 위해서 인생 전체를 멀리서 보아야 하며, 모든 일은 내일이 아니라 세상의 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좋은 것이 좋은 결과가 아닐 수도 있고,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이 좋은 것 이었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의 묘미이다. 결국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깊숙히 감정이 빠져들지 않는다. 물론 생각을 깊게 해야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생각이 깊은 것 역시 객관적이어야 한다. 주관적인 것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감정이 객관적 관점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 반복적으로 되뇌인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게임을 하는 시간이며 나는 플레이어이다. 게임이 끝나서 나오는 결과는 게임의 결과일 뿐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대진표가 짜여져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오직 고유 영역이다.
타인과 똑같을 필요도 타인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성실은 기본적인 인생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다.
많은 욕심이 리스크를 제공하기에 댓가를 치루는 것이다. 이제 욕심 대신에 조율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인생은 내 뜻대로만 절대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된는 것이 있다면 세상의 뜻에 우연히 내 뜻이 일치한 것이다.
인생은 많은 공부와 경험과 연륜과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가볍게 가볍게 최대한 가볍게 힘을 빼고 바라본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기 떄문이다. 단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미엘이라는 주연배우가 연기를 하는 시간이다. 사라져버리는 시간들을 즐기는 것이 최후 승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