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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기 위하여

by miel




자신을 아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행복은 극히 주관적이어서 자신의 성향과 기질에 맞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세상에 기준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게 된다.


평범하지 않는 자신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을 갖으면서 자신을 알지 않으면 인생은 이상한 길로 빠져버리곤 하더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직업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사랑이나 결혼에 관련된 부분까지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가 보기에 별로인 친구의 이성친구가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천생연분인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말이다.

이십대나 삼십대에는 사람의 성향의 차이가 미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을 보는 결의 차이의 섬세함이 부족하였다. 그것은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부재하다는 뜻이며 그리하여 외모로만 태도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지만 자신을 파악하는 방법이나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알수 있는 인문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로 느껴졌다. 만약 이러한 교양과목이 고등교육에 있었다면 이혼의 사회적 문제가 이렇게 일반화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경쟁구도를 갖고 있어서 경쟁에 유용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내게 되며 그로 인해 인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스스로 그런 공부를 자연스럽게 해나가게 되었는데, 지금은 이미 상처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그런 지금의 시간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인생을 성공하고 행복한 삶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한 것은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다가 사라지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때 철학적인 고민을 초등학생때 했던 기억만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 시골의 작은 방에서 그 날만이 기억나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 다양한 경험을 하였는데 경험들이 모두 생각대로 갔으며 극단적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시기도 있고, 큰 돈을 모으기 위해 일에 몰입했던 시기도 있다.

실패를 하여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고, 천직을 찾아내어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결론은 주어진 상황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했을때 위험하다는 것이다. 행복과 마음의 평안이라는 답을 찾기 위해서 신앙을 알아보았고 비로소 답을 찾게 되었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은 후 삶이 안정되고 평안에 이르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격을 알기가 너무 모호했기 때문이다. 너무 약한 마음인데 결단하면 너무 강해졌다. 결단력이 강하고 추진력이 강하며, 하이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 했지만 결국 하이리스크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알 수 없는 자신에 대하여 명리학을 알아보게 되었으며, 명리학에 갖고 있는 기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명리학은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명리학 역시 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식을 통해 해야 할 것은 단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전적 성향마져 명리학에 들어있었다.


물론 매일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외에 모든 것은 지식적 차원이다. 삶은 가정이 있는 화평한 삶보다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자칫 지나치게 극단적일 수 있는 것을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도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맞다고 본다. 다시 한번 재확인 했던 것은 예술적인 기질이 어려군데에서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왔는데 그것들이 명리학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기도 했고 글을 쓰는 취미가 새삼스레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을 알아가는 기쁨과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자신의 위험을 경계하며 자신의 강점을 강화해나가는 세상적 이치에 이제 내가 서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조화와 균형감을 가진 삶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즐기며 살고 싶다. 행복은 생각보다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하며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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