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색을 추앙하라

by miel







# 비 오는 날의 멍 때리기


비가 오는 날은 가장 편안하고 많은 감성이 깨어난다. 아마도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다. 내면의 삶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는 감성이 너무 버겁고 힘들었으나 지금은 이 감성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가을비는 최상의 축복처럼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준다. 봄과 가을은 신이 주신 가장 최상의 완벽한 날씨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인간의 체온에 가장 알맞게 주위를 맴돈다. 오늘도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을 먹는다.


늘 해야 하는 일에, 하고 싶은 일에, 바쁘던 시간을 내려놓고 그냥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이다.

자동차들이 주행하며 바닥에 있는 빗물과 타이어의 마찰로 나는 빗소리가 나의 무념의 시간을 가속시킨다.

잔잔한 바다처럼 정돈된 마음과 빗소리가 어우러져 지금 이 시간은 완벽하고 아무것도 갈망하는 것이 없이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한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정말 천국 같은 기분이다.


매일 다음날 날씨를 보던 시간이 있었다. 직업상 운전을 계속해야 했을 때거나 건물 외부에서 근무할 때였다.

비 오는 날은 근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이 빗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며 일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각자의 인생의 무게가 있다. 그 무게에 꿈이 달려 있다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 인간은 왜 불행한가


세상이 원하는 나, 세상에 뭔가 되고 싶은 나, 세상이 말하는 것에 평범함 조차 되지 못한 초라함이 나에게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세상의 불평등과 부조리함을 비판하면서도 모순적으로 나 역시 한 발을 담그고 있었다. 아... 혼란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평범하지 않는 나의 성향을 <너는 왜 평범하지 않느냐>며 평범해야 한다고 되려 내가 나를 짓눌렀다. 평범한 삶을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하자 있는 사람이었다.


생계를 위해 모두 짓눌렀고 그것은 결국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생계를 위한 나의 삶에서는 만족을 느낄 수가 없었다. 꿈 따위 너무 허황되다고 어느 때는 포기하듯이 나의 삶을 놓아 버렸었다.

너무나 불행하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말이다.


이타적인 삶을 살 때에도, 꿈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줬어야 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내 갈길 간다 하며 계속 꿈을 품고 나아갔어야 했다.

감성적인 나의 성향은 모두가 나를 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냐는 듯이 이해하지 못했고, 어느 한 시기에 누구나 가난할 수 있는 청춘을 혹은 인생을, 세상은 사정없이 무시하고 뭉개고 성공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데올로기에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내 의지와 내 마음이 서로 부딪히는 형국의 삶을 살다가,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특별하고 고유한 영혼을 부여하신 특권임을 나는 믿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마 무조건 90년대 이타적 헌신을 생각했던 시대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나를 지배해 온 듯하다.

과거를 정리 정돈하고 어떠한 미련도 남겨 두지 않고 떠났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성급함도 없이 흘러가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채워지기로 하였다.

내가 고치려고 노력하는 성급함은 자잘한 잡음을 내며 다시 일어나겠지만 커다란 이 명제 앞에 크게 변동하지 않기로 자신과 엄중한 약속 하였다.

두 마음이 부딪히며 싸우던 갈등의 느낌이 겨우 이제야... 이제야 겨우...

마음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니 안정이 되며 깊은 뿌리가 내려진 느낌이 든다.




# 영혼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 허무할 수 있다


가장 이타적인 삶도, 가장 세속적인 삶도, 가장 바닥의 삶도 살아보면서 나의 본체를 알기까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왜 보이지 않았을까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생각해본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안의 목소리를 무시했던 나의 결과였다. 내 주위에 나의 진로를 진지하게 상담해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너무 많이 불행해하지 않았을 테고 나는 조금 더 일찍 희망의 꿈을 품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 자신이 길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에 대한 깨달음 역시 사색에서 얻어진다. 사색은 여유라는 것에서 많은 것을 만날 수 있었기에 여유에 많은 지분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할 것을 늘 주문한다. 삶에서 얻는 실체적인 깨달음이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신 있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깊이 오랜 시간 동안 떠나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다. 물론 요즘 세대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는 채워져 있는 친구들이 많으므로 나 처럼은 방황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교육은 인생을 가르치지는 않으니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기를 보낸다...


소크라테스, 니체, 쇼펜하우어, 톨스토이 수많은 철학가들의 말처럼 각자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현상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찾아내야만 자기만의 인생을 산다. 그것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찾을 때까지 마인드맵을 진행시키듯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야 한다. 때로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진정한 행복의 기준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 그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인생은 나의 인생이 아닌 타인의 인생이 되어버릴 수 있다.




# Artist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성공이 목적은 아니다. 인간의 삶을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자기 철학을 진리와 융합하여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크리에이티브한 작가. 거기에 외부적으로 현재 트렌드를 덧입혀서 작금의 시대에 대하여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예술가적 영감을 소자에게도 주시라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아마 내가 문창과나 국문과를 통하여 글을 쓰지 못하고 다른 길을 통해서 결국 글을 쓰며 가는 것은, 내가 걸어온 길 속에서 만난 삶을 세상에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라는 뜻일 것이다.


가끔 전혀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 다른 사람들도 내가 불편해했었다는 걸 인정하니, 내가 한쪽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인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것은 정말로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물론 나이가 되어도 끝내 모르고 갈 수도 있다. 이제 누구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른 인생 시간을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견과 함께 협력하면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빗물을 통해 씻겨 내려간 세상은 너무나 깨끗하다. 몇 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연의 풍경이 이제야 보인다.

이젠 진초록 풍성한 숲도 고층 아파트 단지도 내게 똑같다. 어느 것이 더 좋거나 더 싫거나 그런 게 사라지고 조화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