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알 수 없는 공허감에 휩싸인다. 이것은 글을 쓰라는 느낌인데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단지 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간은 음악을 틀어놓고 우울을 즐기는 게 가장 적당하다. 사회에서 어떠한 발현도 존재감도 없이 오늘을 보냈다. 사회에서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것이 나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이 마음은 아마도 그 소외된 마음의 반영인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감성적인 인간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물음의 답을 멍하니 물어본다. 아마 어느 날 어느 순간에라도 이 우울 없이 하루를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감성을 싹 무시하고 티브이를 틀거나 너튜브로 다른 사람들의 말과 영상을 저장하면서 나를 모른 척 했겠지...
어쩌면 우린 모두 살아가는 순간이 우울한지도 모르겠다. 이 감정이 오히려 정상인 것이 아닐까. 차분하고 조용하고 조금 다운된 상태... 그저 직장에서는 그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하느라 나를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서야 나는 나로서 존재가 드러나는 것인 거겠지... 그럭저럭 문제없이 하루를 보냈다. 교육도 잘 받았고 동료들과도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감사함과 우울이 같이 살아가는 내 안의 세상.
내 두 손과 두발과 내 몸속의 장기들이 건강하다는 것에 대하여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또한 피곤을 누일 주거공간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그 모든 것들은 모두 교만하여 몰랐던 내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느끼게 된 마음이었다. 신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교만이기도 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자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러하였다.
이 우울을 온전히 느끼며 어둑어둑해져 가는 세상을 보고 있다. 아마 내 또래의 많은 여성들은 자녀와 남편의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시간이다. 요즘 나는 혼자서 내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는 이 삶에 대해서도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알게 되어 아쉽지만 그래도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에게 모든 것은 감사와 다행이다.
불만족이 나는 싫다. 불만족은 끝이 없으며 감정을 절망으로 이끌고 간다. 불만을 내 입으로 절대로 말하지 않으며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혹시 생각이 되려고 하면 재빨리 감사를 찾아 나의 기준을 하향 조정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제대로 물조차 못 마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불만은 자신 스스로의 삶의 가치관과 너무 멀다.
지디의 우울의 노래를 틀었다. 지디의 작사. 작곡의 음악들은 이 시간을 위해 태어났는가...
공허함의 깊이로의 멀리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last dance, 무제 , if you, LOSER, blue, Black...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나보다 타인을 위해 살았던 시간의 가식을 벗고 나를 온전히 만나는 시간. 음악을 통하여 마음속에 나를 더 깊게 끄집어 내어 실컷 부유하게 한다.
그러면 나는 어느 프랑스 감독의 영화를 찍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세상에서 주연이 된 듯한 기분에 저 끝에서 부터 무엇인지 모를 조금씩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만족감이 일렁인다. 혼자 있을 때 채워지는 이 감성들 속에서 내가 혼자 살아가는 이유를 밝혀낸다. 삶이란 것은 늘 선택하고 선택하지 못한 것들 속에서 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은 미련에 잔상에서 허우적대며 지나가고, 그것은 그 자체로 인생의 향기가 되어 사연의 이미지를 추가한다. 더 이상 더 바랄 것이란 게 없는 오늘 나는 그저 그냥 멍하니 존재하고 행복할 뿐이다.
빛을 보지 못한 무의식의 사연들을 장례 치르는 시간이런가... 어느새 창밖에 태양 대신 네온이 낭만을 밝히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인위적인 것을 더 사랑하며 갈 곳도 없는 곳으로 무한히 달려가는 저 자가용의 색은 모두 까만색이다. 점점 더 채워지는 삶의 무의식과 의식의 만남 가운데 이 우울에 감사하며 친애한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나의 저 세상의 치열한 숨소리가 가득한 이 도시에서 그저 오롯이 한정도 없이 이 가을밤에 취해 시간을 잊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