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by miel




#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케이블에서 심심치 않게 1987 영화를 보여준다. 택시운전사 역시 동반으로 나오는데 최근에 다시 플레이 된지 얼마 되지 않는 영화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민주화 운동의 영화를 보기 전에 꼭 펑펑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영화는 내가 겪은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어떤 위인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래서 더 위대한 이들의 죽음의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스터 선샤인의 의적이 되었던 김태리는 이곳에서도 운동권으로 나와 그의 정의로운 사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 영화를 보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아이콘 강동원이 나오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하하하

이한열 어머니와 만나는 강동원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강동원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월 이한열 어머니를 조문하는 모습도 언론에 비춰졌다. 아들에게로 가신 어머니는 행복하시겠지.




# 리얼리티의 책임감



내가 겪었다는 것은 두 가지의 양상을 지닌다. 한 가지는 그 영화의 사실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객관성을 띄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덮어놓고 눈물부터 흐르니 이 분야에서는 연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내게 걸리는 것은 겪은 사람의 리얼리티의 책임감이다. 그것은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 없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신파적이고 싶지 않다. 덮어 놓고 울어서 어쩌겠다는 건가... 이 세대의 10대는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동학혁명 정도의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 우리나라에 그런 일도 있었구나 그렇게 말이다. 유대인은 부림절이 있다. 페르시아가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을 때 유대인인 왕비 에스더가 그의 아버지 격인 모르드개와 유대인을 절멸을 막았다. 지금도 유대인은 그 사건을 기념하며 절대 잊지 않는다.




# 인문학 상실의 시대



어쩌면 작금의 정치가 자기들만의 파벌 정쟁으로 몰아치고 있는 것은 국민이 역사를 잊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국민이 왜 역사를 잊었을까. 내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은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이상하게 인문학, 철학, 사회과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철학은 모두 빨간 놈들이나 하는 거라며 말이다. 인문학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왜 사는가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제도와 체제에 대하여 그것이 정당한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하고 물어본다. 그 고민이 없이 사회의 제도가 문화 발전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 피곤한 고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당장 돈이 되거나 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문학과 철학, 사회과학 모두를 현실에서 지워 버렸고, 연애와 먹방과 부자가 키워드로 자리하고 있다. 2022년은 검언유착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로 정권교체 해보자고 단 한 번도 정치 경력이 없는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서민을 대표하는 당은 야당이 되었다. 물론 역사는 다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 기간 동안에 고통이 따른 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몇 년 전부터 인문학과 철학의 귀환은 너무나 간절히 반갑다. 역사를 잊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다. 역사를 통해 깨달은 경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그 되풀이 하는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역사는 형태만 바뀌어 서민들의 삶을 여전히 궁핍하게 하며 흐르고 있다. 이 사실은 아마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 인격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류는 점점 더 발전된 방향으로 흘러왔다. 노예제도 시대를 생각해보자. 봉건제도의 시대를 생각해보라... 앞으로도 우리는 나의 자녀, 후대를 위해서 인간의 생명권을 넘어 인격권은 무조건 보장되어야 한다. 가끔 티브이를 채널을 돌리다 보면 누가 더 많이 먹는가로 먹방 게임을 하는 데 다음 채널은 구정물을 먹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를 보여주는 후원광고가 나오면 이 세상의 갭은 이토록 천지차이임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복지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일가족이 목숨을 끊은 사건은 계속해서 뉴스에 올라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너무 빨리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사회제도의 구멍이 너무 많은 것이 당연하고 그것들을 빨리 보완하면서 가는 것이 귀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대위를 없애니 마니 하며 온통 정쟁뿐이다. 최근 몇 년간 정치는 조선시대에 와 있는 기분이다.



또한 경제적 사정으로 혹은 자신의 재능의 부족으로 육체노동이나 극한직업도 동등한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고객응대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갑질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경우가 많고, 여전히 갑질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제 시작인 상황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동등한 인권의 개념을 갖을 수 있는 사회 문화의식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수많은 법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 영웅들에 대한 예의



현장에서 일하는 자신이 당당해져야 하고 잘못된 문제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 역시 내 안에 있는 스스로 혹은 타인에 대한 차별로 혹은 열등감으로, 타인에 대해 ,스스로 대하여 또한 치열하게 자신과 싸움으로 문제를 극복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 경쟁이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를 논해야 한다. 경쟁은 서열을 정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보다는 낫다'라는 것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우리의 의식구조는 끝없이 약한 사람들을 추락시킨다. 경쟁은 스스로를 악하게 만든다. 결국 경쟁은 아무도 남지 않는다. 승자도 외로움에 견디지 못하고 자멸하는 구조다. 동기부여를 위해서 라면 경쟁은 차리리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자신과의 경쟁이 맞다. 자신의 목적, 목표와 경쟁하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의존하는 사회성을 띈 생명체이다. 서로 도우면서 발전하고 의지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가져야 할 이념은 상생이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기준에서 나온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영웅들은 자신을 죽여가면서까지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만큼 인류를 사랑했고 인류를 고민하였으며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려고 한 거인들이다. 이 사회는 재벌들의 의해서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희생된 영웅들에 의해서 유지 되어왔다. 노예해방운동으로 독립운동, 인종차별금지운동으로 비폭력운동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인류는 발전되어 왔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전쟁으로 인해 이미 완전히 자멸되었을 것이다.


내가 1987과 택시 운전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이유는 영웅들에 대한 애달픈 예의이다. 그들을 잃고 세상을 잃었을 그 가족들에 대한 애도이다. 내가 내 집에서 웃으면서 티브이를 보고 밥을 먹고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타인을 미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작은 기부 라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덕목이 있는지 꼭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 그것이 영웅들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표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