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에 혼자 살게 된 지 딱 십칠 년이 지나 마흔아홉이 되었습니다.
그간 롤러코스터를 타며 나이가 들어갔는데요. 제가 혼자 살기로 결심한 것은 불과 삼 년 전입니다. 이전까지 잘못된 결혼을 다시 회복하고자 열심히 연애를 하고 이별을 했었답니다.
몇 번의 연애와 고통스러운 이별을 반복했고, 저는 완전히 번아웃이 왔습니다. 매번 아주 열심히 사랑하고 몰입하고 집중하고 집착도 했었기 때문이죠. 아마 안 되는 인연을 억지로 연결하려 했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지친 상태에 이르니 <아! 나에게 인연이 없는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애써 외면했던 문장이었습니다. 삼 년 전에는 글을 많이 써야 했던 시기였어서 그동안의 삶을 성찰하는 시기이기도 했어요
# 이 외로움
가장 고민은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였죠.
저는 유독 외로움이 많이 느끼는 감성주의자이니까요. 그 외로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 외로움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나치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것을 나는 애정결핍이라고 판단했어요.
나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자꾸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나를 불만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을 타인이 주는 마음으로 사랑의 실체를 확인받고 싶어 했었던 것입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 습관의 무서움
또 한 축으로 생각되는 것은 이제 결혼을 다시 하면 마흔여섯인데, 십사 년간 혼자서 지내던 습관에서 누군가와 매일 함께 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니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이 안정이 되며 차츰 느껴졌습니다. 두 번은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단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40대가 넘게 되면 이미 많은 가치관이 형성된 시점이기 때문에 타인과 의견을 합의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만큼 내 생각을 포기 할수 있는 깊은 사랑이 필요하게 됩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의 힘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그런 깊은 사랑은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으로 변하게 되면서 쉽지 않아 진다는 것입니다.
#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조건
삼십 대와 사십 대에 만남의 폭이 좁기 때문에 마음에 맞는 조건과 코드가 맞아 서로 연애할 확률도 희박했어요. 만났지만 결혼을 생각하지 않고 있거나, 빨리 결혼하고 싶거나, 자녀의 양육, 부모님의 의견 등등...
성실한 거 하나만 보거나 대화가 통하는 것만 보고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사람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사랑에도 많은 상황과 조건이 만나야 가능하지만 결혼은 더욱 많은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지만 이루어지는 아주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혹시 연애는 가능하겠지만 결혼은 굉장히 위험해지는 것이었죠. 연애만 하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 할 이별을 알고 만나는 것은 김 빠진 풍선처럼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이 가능한 깊은 관계는 이젠 만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 불편한 게 설렘보다 싫은 나이
연애를 하기 위해 외모를 꾸미고 불편한 옷을 입기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한 것이 설렘보다 싫은 시기가 됐습니다. 이제는 편안한 게 가장 좋고 행복한 때가 온 거예요. 이 문제는 생각보다 큰 문제였습니다. 일단 연애 시작이 안되니까요. 연애가 귀찮아진 것입니다.
# 감정의 소모전
여러 번의 연애경험을 하게 되면 반복되는 것은 그렇게 뜨거운 마음이 어느 순간 식어버리는 인간의 감정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연애에 대한 환상이 걷혔고, 연애감정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연애를 감정 소모전이라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마 인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너무나 쓸모없는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추억이라는 것이 남긴 합니다 딱 하나의 사랑이 유독 오래가긴 했습니다) 더 이상 연애에 대한 로망이 사라졌어요. 적어도 저의 삶에서 말입니다. 모든 상황과 조건이 98% 정도 재혼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감성주의자의 무모한 도전은 드디어 몇 퍼센트 정도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혼자 살기로 결단을 내렸답니다. 조금 서럽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이게 나의 운명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고민하고 기도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며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성적인 영역인 사랑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고민했더니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고 또 무색해졌습니다. 재혼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이라 느껴지니 너무 편안해졌어요. 내가 너무 사랑이라는 것을 낭만적인 영역에 묶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하루 종일 보낼 수도 있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너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며 잠깐 생각나는 고민을 하고 문득 떠올라 글을 쓰기도 합니다.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무척 가까운 소울 매이트를 만나기도 하고요. 소울메이트와 한동네에 사는 노후를 계획하며 작가를 준비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는 것이 혼자라는 자유여서 가능합니다. 이런 모든 생활들이 재미있어졌어요. 외롭다고 느끼면서 우울하게 했던 모든 행동들이 말이죠. 관점의 차이였어요.
삼 년이 지난 지금 지인들은 <네 팔자가 제일 부럽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천생연분의 부부는 부럽습니다만 모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더 잘못되기 전에 멈추고 돌아섰기에 다행이다 싶습니다. 혼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 자기 계발을 하여 꿈을 이루기도 했어요. 소중한 친구들을 곁에 두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좋은 삶의 방식인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긍정의 상황으로 관점을 바꾼 것입니다. 좋은 분을 만나는 행운이 당신에게 온다면 행복한 결혼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정말 깊게 사랑하는 분을 만나지 않으셨다면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들어 가시는 것도 권장합니다. 그러다가 만나더라도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 상관없는 거니까요. 결국 혼자 온전한 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오늘은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오후입니다. 오늘의 비는 매우 낭만적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빗소리는 계속 낭만적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