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밤들

by miel





# 퇴근길에



퇴근을 하는 밤들은 늘 공허함과 허탈감을 만난다. 모든 것에 만족스러운 몇 안 되는 날들조차도 그렇다는 것은 결국 삶 자체가 주는 느낌이라고 짐작한다. 어둑어둑 해 지는 시간부터 칠흑같이 깊은 밤까지 회사 밖을 나올 때 그 어느때에도 농도의 차이일 뿐 별반 다르지 않다.


재빨리 너튜브에서 위로나 재미와 따뜻함을 충전하기 위해 헤매노라면

아... 이런 것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흠. 아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약속을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으로 향하겠지...


좁은 한국땅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경쟁의 구조에서 벗어날 길 없는 우리는, 바늘구멍만 한 작은 성공을 향해 달려 가다가 정신없이 하루가 가버렸다. 거의 모든 일은 꼬이고 꼬여 한숨과 탄식으로 시간을 매듭짓고 아...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삶이 원래 이렇게 즐겁게 웃기에는 가혹한 곳인 곳을.

재빨리 그 현상 속에서 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이 모든 것이 훈련과정이라는 생각과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철학자 마인드로 한 발 한 발 현실에서 벗어난다.

이 부속품 같은 소모적인 삶이 성급함과 불같은 성정을 하루하루 지내며 녹여왔으리라 생각한다.

성격은 한 두번 시련으로 고쳐지지 않으니 말이다. 신이 시련들을 주시는 것은 내 성격을 고치기 위함일 것이라 생각한다.


글에 목이 말라 허겁지겁 노트북 커버를 올리는 나를 보며,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 무한한 의미를 주는 것인지에 대하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은 나의 내적인 대화 친구이고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깜깜한 밤에 멀리서 빛나는 불빛 같은 존재였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알게 하고 내가 갖고 있지도 않는 것 같은 것들을 끄집어내는 힘으로 나는 이 생에 뿌리가 내려졌구나.




# 오늘 멘탈은 휘청



아주 미세한 일들에서조차 깊이 페인 상처를 스스로 다독이고 위로하는 밤에 그동안 멘탈싸움을 했던 내가 사라져 버려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나의 멘탈은 안녕한가...

그래 어차피 이 싸움은 멘탈 싸움이었다. 내가 승리해야 할 목적은 오늘의 성과가 아니었다.

나의 목적은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현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으며,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었다.


멘탈싸움에 승리하지 못하면 나는 영영 이렇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상에서도 그 어떤 것도 승리해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기필코 멘탈싸움에 영적 전쟁에 승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내 불행하게 살아갈 것이고, 멘탈 싸움에 져서 현실에서도 패배자로 살다가 갈 것이다.




# 초월하고 싶다



그렇다면 멘탈을 점검한다. 지금 노력한 것들에 대한 성과를 오늘 만나려 했고, 또 나는 성급했다.

그것이 오늘의 결론이다. 한 달, 세 달, 반기, 일 년의 긴 호흡의 스탠스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오늘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과거의 습관에서 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하루의 만족 지표가 너무나 무모하게 컸다는 것이다. 만족 지표를 낮춰야 한다.

오늘의 만족 지표는 9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경험치가 쌓였으며, 글을 쓴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특별해지고 싶은 생각이다. 인간의 어떤 한 부분은 초월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는 것이다. 그 열망의 이유는 초월 너머가 보이기 때문이다.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도 요동하지 않는 정신상태의 평정심을 갖었을 때 갖는 그 평안함과 온유함이 가끔씩 만져지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것을 열망한다.




# 글은 위대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며 놀라운 힘을 발견한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 하루가 역전이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것은 내 삶의 전체의 시야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맞아 그렇다 나의 본래 삶의 목적은 글이었다. 현실이 아니었다.

오늘 잠시 현실에 붙잡힌 나를 글이 그것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또 하나는 바로 아이러니하게 허탈감이 글을 쓰게 작용한 것이다. 삶의 고단함이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기쁨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이 일기를 쓰며 살아가는 게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 나의 다짐들


나는 이 야경을 또한 잊지 않기로 했었다. 현실에 짓눌려 앞이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 따위를 갖지 말자고 했었고, 집에서는 글만을 쓰기로 자신과 약속했었다. 다짐한 후 첫 일주일 동안 잘 지켜지지 않는 편이었다.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다. 오늘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상심함 때문이었다. 상심이 나에게 루틴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 상심해야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상심하지 않으면 글은 써지지 않는 것인가를 돌이켜 보았다.

다행히 내가 쉬는 기간에 상심하지 않았어도 글을 쓰고 있었다. 아 다행입니다.


오늘 또 하나는 깨닫는다. 글은 상심할 때나 희락 할 때나 써진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의 삶이 거의 모두 상심한 날들의 연속이어서 상심의 글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심지어 오늘마저도 글이 나를 각성시킨다. 내가 글을 각성하며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각성시키며 가고 있는 시점이다. 점점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글이 나의 멘탈 코치가 되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일과 글의 병행이 벅찬 느낌이 들어 걱정이 되었으나, 둘이 스스로 조화를 이뤄간다는 이 상황은 정말로 다행이며 가장 기쁜 안심이 된다. 내가 꿈꾸는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 드디어 자아로 진입하였다



그래 나는 현실이 목적이 아니었구나.

내 세상은 이 글 안에, 나 자신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구나. 잠시 그 세상을 잊고 있었다. 정체성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아를 잊어버리면 애정 하지 않는 현실에서 샌드백처럼 이리저리 펀치를 맞으며 정신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 글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느낌을 받는다. 두서없이 내 뱉은 투정의 말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가 되었다. 그렇다. 지금 난 나의 세상에 진입한 것이다. 이곳은 너무나 평안한 곳이며 아무런 상처가 없는 곳이다. 정체성은 그래도 스스로 오지 않는다. 노트북을 펼쳐야 한다. 내가 아무 말이라도 지껄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슬며시 한줄 두줄 조용히 내곁에 다가와 앉는다.


어떤 생각도 어떤 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며, 어떠한 감정도 모두 수용되는 세상이다. 그곳에서 나는 오늘을 치유 받는다. 아! 이것이었다.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