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인간의 수단이다

by miel





# 작가가 천직인가



40일 정도 계속 글만 쓰다가 이틀 동안 사회생활을 해보니 알겠다.

작가가 천직이라는 것을... 나의 감수성은 이 사회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과 하는 일상의 대화도 지하철 사이에 잠깐 보이는 풍경도, 나는 내 비어있는 공간의 공허함을 느꼈다.

퇴근하자 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


자신의 감성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하는, 감수성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감성들에 대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 많은 상처의 조각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 태어날 때부터 좀 다른 성향으로 태어난 걸까...


세상은 정말 다양한 다른 사람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가끔 나도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끼리 만난다고 해서 내면이 모두 공유되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성도 버거운 데 다른 사람의 감성도 같이 한다는 것은, 잠깐은 가능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가 오히려 힘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혼자서 해야 하고, 그 감수성은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출하기 위해서 발현되는 감성인 것이다.




# 예술은 내면의 표출



그런 공유되지 못한 것들을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그것이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성들이 표출을 원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표출하지 않으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우울과 괴로움을 낳는 것 같다.

세상에서 자신이 완전히 고립된, 연결되지 못하는 느낌인가 보다.


글이나 그림, 조각, 설계도, 음악 모든 것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의 표현인 셈이다. 그런 부류들이 있는 것이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나의 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잠시,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관계를 맺어야 깊고 오랜 인연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내면의 숨을 쉬는 통로이다. 음악, 그림, 조각 모두 그들의 내면의 숨을 쉬는 통로일 것이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살아야 만 하는지 글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글을 쓸 때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은 그것이 나와 가장 일치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이런 나를 몰랐을까...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내야 한다.




# 전업작가가 되겠구나



그러니까 글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것이다. 인간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종목은 다른 어떤 것에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전업작가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어떻게든 전업작가의 길을 가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며 채워지면 채워진 데로 어떤 운과 만나겠구나. 그런 확인이 되니 더더욱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지식인의 고급진 취향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내심 나를 의심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과시의 영역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에게 어느 한구석에서 부끄러움을 갖으며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나에게 글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의식을 넘어서는 어떤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안심이 되었다.




# 무의식의 감수성



나의 감수성은 늘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글을 쓰도록 나를 이끈다는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은 굳이 의식적으로 인위적으로 글을 쓰려하지 않아도 되며, 의식은 단지 무의식을 기다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때로 일부러, 의식적으로 외부에 의해 움직이는 것에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할 때가 많다. 흔히 말하는 멍석을 깔아놓으면 못하는 체질 말이다. 왜냐면 그 의식적인 것은 내 사리사욕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자는 못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오래전에 판단했다.


자신에 대한 욕심을 갖고 무엇을 하면 뭔가가 다 어긋난다. 선의의 것이거나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면 의식주 외에 그 어떤 것도 뭔가가 어긋나고 갈등이 일어나면서, 마음이 갈라지며 일이 진행되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느 때엔 의식주의 영역에서조차 방황한다. 아마 이런 것이 신이 주시는 소명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한다. 내가 가고자 하나 자신은 가고 싶지 않아 하는, 어떤 길을 내 무의식이 지휘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성향들은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된다.




# 내면의 시간들



항상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하루의 시간을 정리한다기보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같은 것이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서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으며 일정한 시간을 보냈을 때 뭔가 자신의 삶이 온전히 충족되는 것을 느낀다. 내면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들 속에서 글은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내향인인 것이다. 외적인 것들을 관심 있어하지도 않고 외적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성향이다. 그저 외적인 것은 필요에 의한 움직임 정도의 것이다. 어쩔 때는 너무 귀찮아하기도 한다. 내면에서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자극이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세계에 대한 낯설음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외향형으로 나온 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나서 많은 변화 중 대부분의 마음의 중심이 외부에서 내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음의 안정이 더욱 정돈되었으며 조급함이 좀 덜해졌다는 것이다. 체질에 맞는 삶으로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니라 내 마음의 흐름을 기준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훨씬 갈등이나 방황이 없다.

적어도 내부에서 갈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자신 조차도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마음이 잘못 가려고 하면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이해 시키려 노력하며 조용히 기다려주면, 이전에 의식적으로 나를 바꾸려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정상화되었다. 아마 섬세하다는 것이 이런 성향을 보고 말하는 것 같다. 나조차 나를 함부로 해서는 더 어긋나고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더 많은 상처를 받는 것 같다. 또 그래서 글을 쓰겠지...


글을 읽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특별한 다른 성향이 있을 것이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하자면 칩십몇억의 우리는 각자 너무나 천지차이로 다르다. 그리고 모두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는 군사력도 있어야 하고 문화생활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성향을 알아낸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된다.

좀 더 정확히 파악될수록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질 것이다.

아마 모두를 그것을 찾아가며 살고 있겠지. 인간의 삶의 방식에 표준은 없는 것 같다.

오늘 밤도 내면의 세계를 탐험하느라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