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NTITY

by miel




# 왜 100년 일까



인생이 왜 굳이 100년 일까... 개인적으로 인생이 너무 길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였었다.

고통의 바다인 이 삶이 50년일 수도 있는데 100년의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지만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쉽게 나름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었다.


인생의 절반 혹은 삼분의 이 정도 살고 나니 인생이 주어진 이유를 조금 해석하게 되었다.

세상을 공부하는 정도의 시간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만큼의 시간, 그 정체성을 펼치며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

인생이라는 100년의 시간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정체성을 발현하며 사는 것인가를 찾아갈 수 있게 주어진 시간인 것이다.

개인의 삶을 통하여 느끼게 되었다.




# 20대는 정체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20대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란 쉽지는 않다.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인식하고 인정되기에도 벅찬 시간이고,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것은 어떤 경험 속에서 반응하는 자신을 보며 알게 되는 것이기에 시간이 꼭 필요한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이 인생 초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가 걸리더라도 최대한 자신에 대한 깊은 여행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휘발성 행복이 아닌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개개인이 각자의 구체적인 중요한 것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면서 즉 자아를 실현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현실화 하며 살아있는 의미를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행복은 어떤 것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인정받는 기쁨이다. 80억의 인구가 각자가 나름의 다양한 정체성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슬픈 일이다.




# 정체성의 기준. 살아있는 증거



정체성은 그냥 존재하지도 그냥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내가 타고난 성질을 변화시키어 발전하게도 하며, 더 성장하게도 한다. 정체성은 계속 변화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성찰하며 가야 한다.

여기서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문제인 것도 있고 사회가 문제인 것도 있기 때문이다. 내 문제는 내가 변화하려 노력해야 더 훌륭한 인격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내 정체성이 무조건 옳은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크리스천이 되어서 성서를 기준으로 성찰하고 반성한다.

일기나 글을 쓰는 작업은 내면의 정체성을 위해 아주 유용한 방식이라고 본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각해야 한다. 죽은 후에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상에 어떤 조건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 다고 해서 스스로를 한심 해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장점이 있고, 특기가 있다. 아니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자리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가장 편안해 하는 자리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 일하지 않고 놀고만 싶은 사람은 찾을 수 없겠지만...

정체성을 깨닫고 정체성에 맞게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바로 이 내면과 외적인 일치성이 비로소 이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 정체성을 무시하면 벌어지는 일



세상과 계급구조에 문제를 인식하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만, 삶은 하루에 대한 최선으로 인한 그 자체로 수고한 충만감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자존감을 통한 소확행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그냥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자신만은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저 살아있는 자신에게 자아존중감. 무한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이것밖에 안 된다고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자신을 무시할 권리는 나 스스로도 없는 것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세상 속에서 마져 초라함을 느끼게 되면, 인간은 자신을 가장 최악의 상태로 끌고 가버린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자신을 괴로워 하며 스스로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많을 돈을 벌기에 부족한 꿈이라고 함부로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무시한 꿈이 나를 소환한다. 끝내 꿈이 그리워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해야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무의미한 시간과 인생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가를 그제야 깨닫는다. 이것이 왜 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가를 그제야 느끼며 인생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후회한 인생은 되돌릴 수가 없다.




# 자존감과 소확행



도시 한 복판의 증권가일 수도 있고, 시골의 고구마 밭일 수도 있고, 바다 한복판 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시간 가는 줄 몰라 하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무시하면 절대 안 된다. 마음의 상태를 늘 들여다 보며 사회생활에 임하여 그 둘의 상황을 절충한다.


자아가 무엇을 원하는 가를 매 순간 들여다보기를 하는 것이다. 정체성을 실현하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나 자신에게 설득도 하는 것이다. '아직은 이게 여의치 않네 잘 감당하며 준비하자'

뭐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감정상태를 읽어주는 것 만으로도 정체성은 어느정도는 실현된다.

최대한 그 정체성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여야 한다. 그것이 나의 본분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회는 사람을 존중하기보다 세상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이다.

사회의 본질이 인본주의적이지 않고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돈의 지위가 높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며 인간은 끝없이 자본보다 못한 인간에 대한 열등감과 결핍감과 초라함에 시달리며 일생을 살아간다.

어쩌면 세상이란 원래 그런 곳이다. 거기에 인간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런 식인 것이니까.

'나는 기죽지 않는다' 라고 되뇌며 기세가 꺾이지는 말아야 한다. 세상은 내 정체성 따위에 관심이 없다.




# 네 마음을 지키라



세상과 나는 그런 면에서 대척점에 서야 한다. 끝없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사회 속에서 느끼게 하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에게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상처 입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각오하며 세상에 나가야 한다.

'니들이 암만 떠들어봐야 나는 절대 좌절하지 않는다'

'또한 나 자신 조차도 나에게 함부로 대하면 절대 안 된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지 않으면 세상에서 쓸모없다는 세상 논리에 즉시 휘둘려 버린다.


상처입지 않도록 지키는 방법은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은 존재 자체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는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사수하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상처들을 들여다 보라. 그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준 상처이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그 상황에 상처받기로 내가 반응하여 입력된 기억인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상처로 입력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논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검증된 논리를 세워야 하며,

이 마음을 지키는 작업은 매일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분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3주에서 7주까지는 계속해야 루틴이 된다고 한다.

매일매일 무엇보다도 정체성을 사수하며 사는 삶은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고요한 바다와 같이 평안하고 안정적이 된다. 세상 속에서 큰 사건으로 무너지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에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 헛되지 않기 위하여



정체성을 찾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나에게 맞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꿈이 된다. 꿈을 꾼다는 것은 너무나 허황되어 보인다. 현실이 그러할 지라도 자기 자신을 탐구하며 계속 꿈을 꾼다는 것은 지금 당장 현실 때문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진 못하더라도 매일 한 시간 두 시간이라도 준비를 하며 살아가면 언젠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때 꿈이 생각날 것이다.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시간의 틈이 생길때 소중한 꿈을 위해 쓰게 된다.

꿈이 역설적으로 현실을 좌절하지 않게 한다. 현실은 정체성을 품지 못하지만 정체성은 현실을 품는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삶이 생기가 돌며 활기차게 바뀐다.

그 자체만으로도 정체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있다.


허나 꿈에 조급한 욕심을 매달면 역효과가 온다. 꿈마저 욕망하면 그것은 너무 불행한 것이 된다. 꿈을 꾸는 것에서 현실과 선을 잘 지켜야 한다. 꿈만은 그냥 순수한 영역으로 남겨두자. 너무 좋아하는 것이 일정한 시간과 결합하면 꿈은 현실화 될 수 밖에 없다. 청춘들이 깊고 깊은 내면의 정체성을 찾기를, 후회없이 살기를 바라고, 혹시 너무 늦게 정체성을 느끼고 꿈을 깨닫게 되어 꿈이 현실화 되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상관없는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어떤 위치에 달성되면 기분 좋은 것이지만 그게 근본적 목적은 아니다.




#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어



언젠가는 궁극적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꿈을 위해 산다는 것은 삶 자체를 역동적이게 하고 진정으로 살아있게 한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것 자체가 꿈을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당위적 목적이 되면 꿈도 순식간에 행복에서 멀어져 버린다. 불행하게 꿈을 꾸고 싶지 않다.

현실에서도 시달리고 꿈에서도 시달리고 이게 뭔가요.

꿈까지도 욕망에 시달리면 인생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즐길 수 있는 시달리지 않는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정체성을 찾는 이유는 평안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모두 인생이 허무하다고 결론 내지 않는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체성을 무시하며 살게 되면 많은 에너지가 잦아들고 사회적 위치에서도 내려오고 나 개인으로서 노후에 들어서면, 살아온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만 쌓인 곳간 앞에서 나 자신이 없는 것이다.

돈은 수단으로써 필요하지만, 정체성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재 목적의 문제이다.




# 정체성을 즐기며



지금 당장 내 현실에 무슨 꿈이냐고 하지만 선택의 결과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탓을 할 수 없다. 나의 선택의 결과 일 것 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가족의 가장이라도, 정말 치열하게 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류 역사의 모든 사회는 언제나 문제 투성이이고 욕할 땐 욕하더라도 ,인류와 민족을 위해 인생을 버린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갖으며, 최대한 즐겁게 자신의 정체성을 실컷 탐구하며 살자.


어떤 꿈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너무좋다. 그것만으로도 자아는 만족감을 느낀다. 사랑해준다는 것은 지극한 관심이다.

시간을 내어 동네 작은 카페에서 멍 때리기를 하면서 정체성을 깨닫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저 그 정체성을 느끼며 자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 만으로도 기쁜 것이다.

정체성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