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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Apr 01. 2021

나를 만나기 시작한 봄

휴대폰 손 사진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캐리어도 없이 빨강 배낭을 메고 떠났다.  최소한의 여행 물품을 챙겨서 나선 길, 맨몸으로 가는 길이었어도 마냥 좋았을 발걸음이었다.  미련스럽게 앞만 보고 살았던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닐 테지만, 어느 순간 멈춰 서서 돌아보니 이렇게 사는 것에 후회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각의 변화는 조급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고, 그 순간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했다.


그렇게 마음에서 생각으로 행동으로 이어진 발걸음이 빨간 배낭을 둘러메고 나서게 한 것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던 그 시절,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었지만 계획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나설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아스럽다.


무엇인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을 테고 어디로든 떠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을 테지. 아마도 그때부터 내 삶에 내가 없음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6년전 봄, 제주



6년 전 사진이다.  빨간 배낭 하나 메고 나선 길, 제주로 향했다.  직장동료들과 여러 번 다녀온 제주였지만, 계획되지 않은 시간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를 만나기 위한 시간을 갖기는 처음이었다.  그때 만난 나는 소녀였다.


계획이 없는 일정으로 걷고 또 걷고,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고, 렌터카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간으로 꽉 채웠다.  3박 4일의 여행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좀 더 나답게 살아가고자 다짐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그저 맛보기였을까, 새로운 시간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약 오르는 선물이었다.  감질나게 맛보기만 주고 계속되는 시련이 찾아왔고 현실을 이겨내기에 온 힘을 쏟느라 나란 사람을 다시 생각할 수도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한다.  6년 전에 소녀감성을 느꼈던 건강한 나는  암이라는 고약한 친구와 함께 하느라 힘들었지만,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다시 소녀감성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봄은 희망이다




봄은 생명이 살아난다.  메마르고 삭막한 기둥 같았던 나무에 새잎이 돋아난다.  봄이면 나무를 살피는 버릇이 있다.  길을 가다가  물먹은 나무에 여리디 여린 새순이 돋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발걸음을 멈추고 새 생명의 기운을 얻듯 한동안 바라보곤 한다.


지난날 우연히 보게 된 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것을 보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픈 몸이 회복이 되지 않아 힘들 때, 나도 새순처럼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생각지도 못한 아픔으로 모든 것이 균형이 깨지고 흔들린 시간을 견뎌야 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때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길을 가다가 가로수에서, 산책을 하다가 공원에서, 등산을 하다가 산에서 등등.. 우연히 만나게 되는 새순이 돋고 있는 나무를 만나면 휴대폰에 담는다. 기분 좋음도 함께 저장한다.  가끔 울적할 때 특효약이 되어준다.


휴대폰에는 아주 많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다. 사진은 추억을 꺼내 주기도 하고 지난날 기억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많은 사진들을 보며 요즘의 나와 연결해 주는  사진 한 장, 6년 전 봄이 함께 찾아왔다.


그때 느꼈던 희망찬 봄이 나를 부른다. 여리디 여린 새순이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나듯, 소녀 감성 가득 담은 새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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