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를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하고 화려한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3월, 어느새 다 지나고 이제 남은 시간은 3일, 설렘 가득한 찬란한 봄날 이건만 나에게 할당된 봄은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 봄은 사무실에 앉아 창밖으로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햇살 좋은 날에는 햇살을 구경하고 봄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를 구경하고, 황사가 짙어 우울한 봄까지 그저 창밖을 보며 느끼는 시간으로 봄을 맞이했다.
3월이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시기다. 5월이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고약한 직업을 선택한 대가로 긴 세월 동안 봄날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해마다 아쉬움과 봄을 누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지낸 시간이다. 약 올리듯, 오는가 싶었는데 벌써 떠나고 없는 봄, 느낄 새도 없이 빨리 사라져 버린 계절인데, 그렇게 짧은 시간 왔다 가는 봄을 일하느라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땐 그랬다.
일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간이었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일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해야 할 일이었고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기를 반복하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그런 일상이 나쁘지 않았다. 싫지도 않았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있었고 해내고 난 후 두둑한 보상도 좋았다.
다른 데로 눈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일만 하다가 훅 들어오는 봄바람에 흔들릴 때가 있다. 살랑이는 바람과 동행하는 봄 햇살은 어찌 그리 화사한지,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나 마음은 벌써 어디론가 떠난 상태다. 살랑이는 봄바람맞으며 고운 햇살에 취해 쌓여있는 일을 나 몰라라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날이면 도저히 야근을 이어갈 수 없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일을 접고 사무실을 나선다.
봄바람이 훅 불어오고 봄 햇살에 샤워하듯 눈과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는 날을 만나면 그렇게 잘 참으며 일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그 유혹에 빠져버린다.
그렇게 어쩌다가, 겨우 야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훅 들어온 봄바람이, 봄 햇살이 그저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매년 반복되는 봄날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봄날은 온다
한 해 한 해 표 나지 않을 만큼의 변화된 봄날을 맞이하는 중이다. 남들의 눈에는 어느 해와 다를 것 없이 날마다 일에 빠져 지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변화를 느낀다. 아니, 스스로 변했음을 느낀다. 무언지 모를 설렘을 안겨주는 보통의 봄날을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이 봄을 마중 나가면 몸도 따라나서리라 믿는다. 촉촉한 봄비를 맞아 더욱 싱그러워진 봄이 느껴진다.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몸이 나설 차례다. 성큼 다가와 있는 봄에게 먼저 손 내밀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