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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Apr 07. 2021

나는 소풍이 싫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그립다


봄 소풍, 어린 시절에는 봄 소풍이 최고의 나들이였지만, 시골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그냥  다 비슷한 환경이어서 그곳이 특별히 좋은 곳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기대감이 있어서인지 그날은 그냥 들뜨기도 했던 거 같다. 소풍날이 다가오면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들기도 했던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어릴 적에는 소풍을 가더라도 김밥이 없는 소풍이었다. 김밥 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겠지만, 김밥을 먹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김밥을 싸가는 소풍은 아니었다. 기억나는 것은 사이다와 계란이다. 평소에 먹지 못하던 사이다가 가장 기억에 남고 계란은 보너스처럼 따라왔다.


소풍 가는 날 기억 중에 또 한 가지 특별히 남아 있는 것은 동행하는 엄마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임원을 맡은 친구들의 엄마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게 동행한 엄마는 음식을 바라 바리 싸와서 선생님들도 주고 같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나눠먹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도시락을 먹었다.


소풍보다는 운동회가 더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풍에는 몇몇의 엄마들이 동행해서 소외감을 느껴야 했지만, 운동회는 마을 잔치라고 할 만큼 동네 주민들이 모두 참석해서 즐기는 자리였다. 그때는 농사일로 바쁘신 우리 엄마도 오셨고 할머니도 오셨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귀한 음식들을 싸오신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같은 동네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소풍을 자주 다녔다. 김밥을 싸고 돗자리를 들고 뒷산에도 오르고 공원에도 가고 차를 타고 멀리 가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지만 엄마는 괴롭다. 김밥을 싸는 것도 서툴고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소풍을 가기도 전에 지친다. 결국에는 기분이 언짢은 소풍이 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힘들게 소풍을 다녀야 했을까? 서툴러서 힘들었던 기억,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스럽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소풍을 다녔던 기억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가끔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힘들었어도 애쓴 보람이 있었네,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주말을 통째로 혼자 보내고 싶었던 날들도 있었다. 소풍 가는 대신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아마도 엄마여서 소풍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주말마다 어디로든 소풍 나가고 싶어 하는 가족들과 널브러져 쉬고 싶어 하는 나 자신과 힘겨루기를 해야 했던 날에도 결국은 늘 소풍이 이겼다.  힘들고 귀찮은 순간을 이겨낸 대가로 가족들에게 즐거운 소풍을 선물한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 보니, 소풍을 갈 수가 없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소풍 가자고 조르는 것은 엄마다. 아이들은 인심 쓰듯 한 번씩 시간을 맞춰준다. 이제야 소풍의 즐거움을 알겠는데, 소풍을 갈 수가 없다.


만만한 상대는 남편이다. 이제는 둘이서 소풍을 간다. 서툴러서 힘들게 했던 김밥을 싸지 않아도 된다. 돗자리도 필요 없다. 소풍 가는 날 필요한 것은 즐거워할 마음만 준비하면 된다.


그 시절에 제대로 즐거울 수 없었던 소풍은 그 모습 그대로 기억 속에 있다. 어느 한 시절의 기억 하나 꺼내 돌아보면 이야기 한 보따리 펼쳐진다.


그리움 가득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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