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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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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Apr 14. 2021

걱정 마, 봄은 또 오니까

봄이 말하기를..


아침 6시면 현관문이 열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조용한 새벽을 깬다. 그  소리가 알람이 되어 눈을 뜬다. 눈 비비고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간단히 차린 아침을 드시고 출근을 하신다.


결혼하고 함께 살면서 계단 오르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상관없이 옥상에 올라 아침 운동을 하는 것으로 아버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그 꾸준함에 존경을 표한다.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결혼을 했지만 살림에는 소질이 없었던 며느리는 매일 반복되는 아침상이 늘 고민이었지만, 입맛이 소탈하셨던 아버님은 차린 대로 드시고, 꼭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해주셨다. 덕분에 아주 잘 먹었다~ , 맛있게 먹었다~, 등등.. 아침을 드시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는 TV 속 내용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며느리를 능력자로 인정해 주시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첫아이를 낳았을 때, 누군가는 아이를 양육해야 했다. 당연히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 하겠지만, 일하고 싶어 하는 며느리를 위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는 것으로 며느리 편을 들어주셨다. 살림하는 것과 친하지 않은 며느리는 직장 생활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았고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알아주셨다.


시어머니는 하시던 일을 그만두시고 육아를 맡아주셨고, 며느리는 경력단절 없이 계속해서 직장인으로 남았다. 직장 생활을 하셨던 아버님은 사회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아시기에,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는 며느리가 능력 있어 보이고 기특해 보였던 거 같다.








매년 생일이 되면 가장 먼저 챙겨주시는 분이 시부모님이다. 같이 살 때도 그랬고 분가해서 살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항상 잊지 않으시고 용돈 봉투를 챙겨 주시고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 남편보다 자식보다 시부모님의 챙김을 더 많이 받으며 지낸듯하다. 감사할 일이다.


살다가 살림이 넉넉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먹고 살 정도는 되었을 텐데, 뭐라도 사들고 가거나 특별한 날에 용돈이라도 좀 드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내가 드린 것의 두 배로 돌려주셨다. 그 정도로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건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미안스럽고 죄송스럽다. 얼마나 짠한 마음이셨을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가 돈독하다. 아들 말은 안 들어도 며느리 말이라면 만사 오케이라는 듯이, 며느리의 청을 거절한 적이 없으시다. 항상, 너 알아서 해라~로 끝난다. 그렇게 믿어준 마음이 감사하다. 그 마음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기도 하다. 아이들도 다 자라 성인이 되고 이제는 형편이 좋아졌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며느리에게 와 있다.








찬란한 봄인데, 아버님은 아직도 겨울을 보내고 있다. 아침 6시면 옥상에 올라가서 아침 운동으로 시작된 하루를 보내며 누구보다 건강을 잘 챙기셨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작된 몸의 변화는 생소한 병명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잘 관리해온 건강한 몸은 단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수술을 해야 할 텐데, 방해 요소가 너무 많다.  수술을 강행할 경우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어서 선뜻 수술을 할 수가 없다. 수술 대신 약으로 견디고 있는 상태지만, 다행스럽게도 잘 버텨주고 계신다. 고집부리지 않고 의사의 처방에 잘 따라주는 것이 감사하다.


햇살은 좋은데 바람이 차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심하다. 유난히 비도 많이 내린다. 그럼에도 봄은 봄이다.

봄이 말하기를.. 봄은 또 온다고 했다. 봄 햇살이 세상을 따뜻하게 내리쬐듯이, 아버님에게도 곧, 봄이 올 것이다.


아버님의 봄날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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