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러더라,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더라고. 그걸 경험하고 있는 거 같아. 계단 중간쯤 서서 아래로 내려갈까 위로 올라갈까 망설이는 마음인 거 같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되었어. 이런 느낌 당황스럽다.
무한 긍정, 긍정의 아이콘, 모든 것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변할 것일까? 아니면 상황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 것일까? 요즘 많이 변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어. 변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한 거 같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혼자 변함없이 산다는 것도 무리지 싶어.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희망적인 마음을 갖게 되더라. 병명을 알았으니 수술받고 치료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 또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잘 되었고, 마음도 다치지 않게 다독거리면서 잘 견뎠지. 그렇다고 전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말 못 하는 고통이 있었고, 그것을 오로지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잘 보냈어. 대견하게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말이야, 요즘 아주 낯선 마음이 자꾸 끼어들어서 당황스럽게 만들더라. 그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기분이야.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자꾸 마음을 끌어내리는 또 다른 마음이 들어차 있어. 일어서면 또 주저앉히고 다시 일어서면 주저앉히고.. 왜 그럴까 생각해 봤어.
이유가 뭘까? 단순하지는 않더라.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아직도 진행 중인 일들이 많지.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일은 없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지.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쳤나 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 거야. 일어설 기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자꾸 무슨 일이 생기는 거야. 버티다 한계에 다다른 거지.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나이가 들었나 보다. 예전 같으면 쓰러지고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회복되던 몸과 마음이 이렇게 무너져 내릴 때까지 회복되지 않다니, 분명 나이 든 탓일 거야. 젊은 시절, 어른들을 보면서 오십 대의 모습을 상상해 볼 때가 있었어. 그때쯤이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여유로운 중년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오십 대가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진 것도 없더라. 나이만 먹은 거 같아서 씁쓸하다.
단순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고민조차도 오래가지 못하는 편인데, 어찌 이런 마음이 똬리를 틀고 앉았을까. 지하와 지상을 잇는 계단 중간쯤 서서 위아래를 번갈아보면서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올라가기에는 힘에 부치고 내려가기는 싫은데 자꾸 주저앉는 마음은 아래로 향하고.
아래서 아무리 유혹해도 위를 향해 올라가야겠지? 몇 계단 올라가면 밝은 세상이 보이는데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잖아. 몸이 조금 힘들다고, 마음이 조금 지쳤다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나 몰라라 팽개칠 수는 없지. 힘들 때는 좋았던 기억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고, 행복하고 기뻤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잠시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겠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줄게. 칭찬해 줄게. 잘 살고 있는 거야. 힘들면 쉬었다 가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보자. 먼 훗날 지금을 떠올렸을 때 미소 짓게 될 거야. 그때 참 잘했다고 스스로 대견해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