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늦잠을 자고 주말을 여유롭게 시작한 하루였습니다. 느긋함도 잠시, 이것저것 눈에 띄는 집안일이 쉬는 것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모른 체하고 쉬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거슬림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서고 맙니다.
오늘의 타깃은 냉장고입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들, 요리를 해서 무엇인가 잘 해먹지도 않음에도 뭐가 그리 많이 들어있는지 며칠 전부터 냉장고가 거슬리기 시작해 벼르던 일을 하기로 맘먹었습니다.
냉장고 비우기도 이렇게 벼르고 해야 정리가 되니, 이것도 문제입니다. 날마다 조금씩 정리해 가면서 생활하면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로 바로바로 정리되지 않는 게으름을 어찌해볼 수가 없습니다.
냉동실과 냉장실을 정리하는데 하루의 시간을 쓰면서 반성하는 마음만 커집니다. 몸은 힘들고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쓰게 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혼자 화가 나기도 하더라지요.
냉동실에는 이렇게 비닐봉지에 싸여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포장된 음식들은 모두 엄마가 보내준 귀한 음식재료들인데, 그때그때 소비하지 못하다 보니 냉동실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냉동실에 쌓여있던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버려지는 음식을 보면서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해서 많이 불편한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보내준 정성을 고이 모셔놨다가 그대로 버리는 꼴이라니.. 죄받을 거 같아요. ㅠㅠ
농사를 짓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귀한 음식을 귀한 줄 모르고 쉽게 얻어먹으며, 또 귀한 줄 모르고 버리게 되는 상황을 만든 현실이 많이 불편하고 속상했습니다.
냉장고를 정리하며 하루 종일 반성하며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정성스럽게 보내준 음식재료들을 정성스럽게 잘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먹지 못하고 버려진 음식을 생각하니 또다시 속이 아파집니다.
뜨거운 여름날 몸살처럼 찾아온 엄마의 아픔은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우리들을 허둥대게 했다. 우린 눈물보다는 웃음을, 걱정보다는 격려를 보내며 서로서로 응원했다. 엄마는 여전히 씩씩하게 치료 중이며 우리는 변함없이 서울과 시골을 오르내린다. 희망을 안고 한마음으로 바라고 믿는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뜨기도 한다는 것을. <여름이야기 p21 중에서>
여름 이야기에서 엄마에 대해 쓴 한 구절입니다. 뜨거운 여름날에 이토록 치열하게 싸우며 이겨내고 있는 엄마의 손길이 닿은 음식들, 생각이 여기에 닿으니 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무심한 탓에 엄마에게 큰 죄를 지은듯합니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 감사히 잘 챙겨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