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는 송편 대신 만두를 빚었다. 가족 모두 만두를 좋아해서 잘 먹지 않는 송편은 조금만 사기로 하고 만두를 빚어서 푸짐하게 먹기로 한 것이다. 제사가 없어서 모인 가족들이 먹을 음식만 준비하면 되는데도 큰제사를 모시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명절이 다가오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평소에 하지 않은 음식을 해야 하는 부담과 음식을 잘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해져서 이래저래 명절은 별로 반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결혼하고 딱 한 번 김치를 담가본 적이 있다. 시댁에서 함께 살던 때였는데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신 동안 김치가 똑떨어진 것이다. 음식은 전혀 하지 못하는데 김치까지 없으니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는 사 먹는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던 때라 한번 담가보자 했던 것이다.
시어머니가 김치를 담글 때 옆에서 심부름을 하며 보던 것이 있으니, 하면 될 것 같았나 보다. 겁도 없이 김치를 담그겠다고 나서다니,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마저 든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그동안 먹었던 김치 맛을 찾을 수가 없는 김치였다. 실패한 김치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느꼈던 절망스러운 기분만 남아있을 뿐이다.
추석 전날 만두소를 준비해서 가족들과 함께 만두를 빚어서 맛있게 먹었다. 쪄서도 먹고 만둣국으로도 먹고, 인내하며 만두를 빚은 보람이 느껴질 만큼 만두는 맛있었다. 숙주나물도 하고 고사리나물도 했다. 늘 시어머니가 해주셨던 것들을 혼자서 재료부터 준비해서 해보기는 처음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시어머니 조수 노릇을 허투루 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하게 되고, 하고 보니 또 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했다.
어머님의 건강 상태는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 아프기도 했고 사고로 인해 아픔이 더 심해지더니, 올해는 움직임이 힘들어질 정도로 많이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 추석이라고 예전처럼 음식을 할 상황이 되지 못한 것이다. 제사도 없는데 이런저런 음식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말없이 최소한의 음식만 하자고 생각하며 준비를 했다.
추석인데 전을 부치며 냄새도 풍기고 해야 명절 분위기가 날 텐데, 요리 잘하는 동서가 전을 부쳐오겠다고 해서 기름 냄새 없이 수월하게 추석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동서네 부부가 도착했다. 여러 가지 전을 준비하고 김치를 비롯해서 다양하게 밑반찬을 해서 가지고 왔다. 착한 동서 덕분에 추석이 명절 같은 분위기가 더해졌다.
동서가 가지고 온 짐을 풀자 다양한 반찬들을 보며 시어머니가 그렇게 반가워하실 수가 없다. 이제는 반찬 선물이 제일 반갑다고 하시며 아주 좋아하신다. 맘대로 시장을 갈 수도 없고 예전처럼 반찬을 만들 수도 없게 된 현실이 되고 보니 누군가 반찬을 해서 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맙고 반갑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음이 아프고 죄스럽다. 이제 와서 음식 하는 것을 배울 수도 없고, 배운다고 하루아침에 요리를 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남들은 일하면서 살림도 잘하던데 그동안, 그 많은 세월 동안 난 뭘 했는지 모르겠다. 시어머니가 해준 음식 넙죽넙죽 받아먹을 줄 만 알았지, 한 번이라도 해서 드릴 생각을 못 했다. 난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해볼 생각도 안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죄스럽게 느껴졌다.
물릴 수도 없는 세월이 야속하다. 그동안 다 잘 해왔다 해도 음식을 못하는 것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일을 해드릴 수가 없다. 돈 주고 사면되는 일일 수도 있으나,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일이다. 생활용품을 주문하고 식자재를 배달하고 병원을 동행하고 주말마다 가서 안부를 묻고.. 이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김치 담그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