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계속된다.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여름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던 지난시절이었지만, 지금은 뜨거움 마저도 싫지 않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딘 대가로 엄마와 나에게 큰 선물을 준 여름날이다.
사느라 바빠서 잘 지내시리라 믿고 늘 뒷전이었던 엄마,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밀린 숙제 한꺼번에 해결하라는 듯 많은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지난 여름날이었다. 주말마다 엄마를 보러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가장 오래도록 소중함으로 기억될 시간이었다.
햇볕 아래서 일하는 엄마이기에 더위를 먹어 속이 안 좋은 건가, 여름이라 배탈이 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식중독? 처음에는 연락도 없이 응급실을 다녀오셨고, 그랬음에도 새벽에 계속되는 토악질에 날이 밝자 또다시 응급실을 가서야 연락을 하신 게다. 처음에는 날이 더워서, 연세가 많아서, 힘드셔서 그런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각종 검사에 시달려 탈진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날들이 계속되고, 위암 3기 진단을 받았을 때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그럴 수 있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혼자된 30대부터 팔순이 되기까지 온몸으로 정말로 열심히 살아온 게 죄일까, 왜 그런 큰 벌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대장암이었다.
뜨거운 여름날에 차가운 수술대에 올랐다. 침대의 찬 느낌이 살갗에 닿는 느낌도 싫었고 수술실의 차가운 기운은 더 싫었다. 가장 싫은 것은 나 혼자 그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해줄 수 없는 일이지만, 세상에 나 혼자가 된 느낌으로 차가운 공기의 수술실에 누워있는 그 기분이 정말 싫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 수술 후의 힘든 과정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수술만 잘 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던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통원치료를 하며 일상생활을 회복시키기 위한 시간들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받는 과정보다 훨씬 힘들었다. 왜 아무도 그런 사실은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수술만 잘 되었을 뿐,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힘들어졌다. 생각대로 회복되지 않는 몸은 절망을 안겨줬다. 일상생활을 빼앗겨버린 시간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일상은 마음의 병으로 찾아왔다. 우울했다.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우울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혼자 일어서야 했다. 이겨내야 했다.
그때도 폭염이었다. 그런 날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추웠다. 몸도 마음도 춥고 시리게 보낸 날들이다.
여름을 사랑하기로 했다.
항암치료를 잘 받은 엄마는 정말 많이 회복되었다. 수술을 할 수는 없지만, 암의 크기가 작아져서 놀라울 만큼 좋아졌다. 가장 좋은 것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는 내가 기쁘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지켜보는 사람도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수술을 잘 마치고 일상 회복을 위해 애쓰던 나도 잘 적응하고 있다. 수술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먹을 수 없음이 고통이듯이, 먹고 난 후 배설을 잘할 수 있는 일 또한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하지 않음에도 수시로 배설되는 고통이란..
항암효과가 좋아 회복됨을 보여준 엄마와 수술받고 잘 견뎌준 나에게 고통과 희망을 함께 안겨준 여름날이다. 엄마와 나의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뜨거움 속에서도 살아남을 희망을 심는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들판을 바라보며 거둬들일 곡식에 대한 기대로 엄마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찬다.
포기하지 않은 직장생활로 나는 겉으로 보이는 회복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 회복되었다.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며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여름에서 시작해 또다시 맞이하는 여름까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그 여름 안에서 희망을 보았다. 잊지 못할 여름이다, 엄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