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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Jul 03. 2022

엄마의 직업

호박전을 부치며


때 이른 여름이 시작되고 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더위와 싸워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름이 되어도 더위와 싸우며 일을 해야 하는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한 하루를 시작하겠지요.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자라난 농작물을 곱게 수확해서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일상 속의 낙이기도 합니다.



마트에 가서 호박 하나 사서 먹으면 그만이지요. 편하게 사서 먹을 수 있지만 엄마의 정성을 알기에 사서 먹지 못합니다. 마트에서 파는 호박에 비하면 못생기고 덜 자라 상품성으로 보면 많이 떨어지지만 작은 호박 하나 열릴 때마다 이것은 큰딸, 또 하나 자라면 이것은 작은딸 준다며 마음속으로 찜해두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파는 호박과 비교할 수 없는 호박입니다.



며칠 전 엄마의 정성이 담긴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호박, 오이, 수박 여름에 나는 것들을 수확하셨네요. 올해는 가뭄이 심해 농사가 대체로 별 재미가 없어 보입니다. 호박은 덜 자란 듯 작고 오이는 반듯하게 자라지 못했네요. 수박은 가뭄에 쪼그라든 거처럼 크기가 작습니다.  오이를 한 입 베어 물으니 아삭한 맛과 즙이 입안 가득 고입니다. 못생긴 오이맛이 일품이네요. 덜 자란 것처럼 작은 수박은 빛깔은 좋으나 역시나 조금 아쉬운 맛이네요.







엄마가 보내준 호박을 씻어서 호박전을 해보려 합니다. 호박은 채 썰어서 준비합니다. 전에 보내준 양파가 보이네요. 양파도 하나 채 썰어 줍니다. 매운맛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냉장고를 보니, 역시나 엄마가 보내준 매운 고추가 보이네요. 고추 하나 다져서 넣어줍니다.



엄마가 보내준 호박, 양파, 매운 고추를 반죽에 넣고 잘 섞어봅니다. 프라이팬에 호박전을 부칩니다.



더운 날 불 앞에 있으니 땀이 줄줄 흐릅니다. 흐른 땀을 닦으며 엄마를 생각해 봅니다. 뜨거운 햇살에도 수시로 들에 나가 농사를 짓는 엄마는 온몸으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일하겠지요.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덥다고, 땀난다고 불평을 못하겠습니다. 고작 호박전 하나 부치면서 덥다고, 그것도 에어컨 켜진 집안에서 땀난다고 투덜거린 내 모습이 미안해집니다.








노릇하게 부쳐진 호박전을 좋아합니다. 호박, 양파, 매운 고추만 넣었어도 그 맛이 아주 좋습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양념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네요. 부드러운 식감이 먹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된장국에 넣어도 될 호박을 이 더운 날에 왜 호박전을 하고 싶었을까요? 엄마에게 호박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아마도 호박전이 먹고 싶었나 봅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호박전을 부치는 동안 엄마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식이 보기에는 고생스러워 보이는 농사일이 엄마에게는 직업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엄마의 직업은 농부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저 일하는 엄마가 고생한다는 생각만 했지, 엄마의 직업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의아스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힘들고 고생스러운데 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느냐며 잔소리할 줄만 알았습니다. 엄마의 일을 줄이고 못하게 하려고 애썼지, 엄마의 직업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죄송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규모가 작은 농사를 짓더라도 농부는 농부인 거지요. 그렇습니다. 엄마의 직업은 농부였습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값진 호박전을 먹었습니다.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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