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 씨의 어린 시절

by 단미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엄마는 팔순이 넘었지만 목소리가 아직도 젊은이처럼 발랄하고 생기 넘친다. 반가워하는 목소리를 확인하고 전화한 용건을 꺼냈다.


"엄마 어릴 적 이야기 좀 해주세요~"

"어릴 적 이야기는 기억나는 것이 없구나"


엄마가 아닌 어린 경애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기억에 없다는 엄마를 졸라 경애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경애는 외동딸이다.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에 외동딸이라는 것이 의외였다. 경애가 어릴 적에는 한집에 아이들이 네댓 명은 되어야 평범한 일이었으니까. 그 옛날에 경애가 외동딸이었던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경애를 두고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

경애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가족을 두고 떠났다. 경애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경애를 낳았으나, 그 시절 병명이 뭔지도 모르고 아파서 세상을 떠났다. 경애가 3살 때 일이었으니 어린 경애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린 딸을 홀로 키우게 된 경애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경애는 우리가 키울 테니 친정으로 돌아가세요”

“........”

“경애는 걱정 말고 가서 잘 살아요”

“.......”


경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작은아버지는 경애를 맡아주기로 결심했다. 경애엄마의 나이는 젊었고 경애는 어렸다. 작은아버지는 경애를 자식처럼 키우기로 마음먹고 경애엄마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엄마는 경애를 두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자라서 엄마가 시집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엄마를 만날 수는 없었다.

자식을 두고 내 인생 살겠다고 떠난 엄마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경애는 기억에도 없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작은집에는 언니오빠들이 많았고 날마다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자랐다. 엄마아빠의 사랑은 없었지만 언니오빠들과 작은아버지의 사랑으로 곱고 예쁘게 자랐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할머니가 된 경애 씨의 기억에도 홀로 남겨진 어린 경애는 불쌍한 모습이 아니다. 언니 오빠들과 웃으며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엄마 없는 경애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나 보다.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일찍 철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자의 말씀 중에 “상처는 잊되 은혜는 잊지 말라”라고 한 유명한 말이 있다. 경애가 자란 후, 엄마가 3살 된 어린 딸을 두고 떠나버린 사실을 알았을 때 크게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상처보다 갈 곳 없는 어린 경애를 보듬어준 작은아버지의 은혜를 더 크게 기억하고 있다. 팔순이 지난 지금도 어린 경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작은아버지의 사랑과 언니오빠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경애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자신을 두고 시집간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다. 세 살부터 스무 살이 넘도록 자식처럼 키워주신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는 아버지였고 엄마였다.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내 집처럼 살던 작은집과 이별하게 된 것은 경애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였다. 경애나이 스물셋이었다.


세 살 때 엄마와 헤어지고 20년이 지난 후 경애는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시집가기 위해 어린 딸을 두고 떠난 엄마는 경애가 시집간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작은집으로 찾아왔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를 만났지만 이미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으니 특별한 감정이 있을 리 없다. 한번 만난 엄마를 뒤로하고 집을 떠나는 경애는 그렇게 엄마와 또 한 번 덤덤하게 이별했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어린 경애는 어른들의 결정으로 엄마 없는 아이가 되었다. 경애엄마 또한 어른들의 결정으로 딸을 버린 모진엄마로 살아가야 했다. 평생 딸을 생각하며 살았을 경애엄마의 삶도, 엄마 없이 살아온 경애의 삶도 애달프다. 모두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으나 모두가 행복했는지 알 수 없다. 어린 딸을 두고 등 떠밀려 시집간 경애엄마는 행복했을까?


내가 엄마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난 후 작은집에서 언니오빠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면 난 잘 살아냈을까? 엄마처럼 당차게 세상에 맞서 살 수 있는 씩씩함을 키울 수 있었을까? 작은집에서의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만큼 현실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온 어린 경애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엄마 없는 삶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쓰라린 상처를 후비는 것은 몹시 아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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