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미 생각

산책

그곳은 삶의 현장인 것을..

by 단미


노랗게 물들어 가는 들판이 참 예쁘다
어쩜 저리도 단정하게 가꾸어져 있을까
피 하나 용납하지 않는 까탈스러움,
눈에 띈 피 하나 뽑으러 들어간 엄마의 모습은 세워놓은 허수아비인 듯 보이고

노랗게 익어가는 벼
논두렁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콩
산너머로 넘어가는 해
아름다운 모습은 잠시 현실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나 열심히 키우고 가꾸는지
일하는 순간에는 아픔도 힘듬도
없다는 듯이 생기 돋는 모습에
쉬자 그만하자 말리기를 포기하고 만다

힘든 항암치료에도 지지 않고
견디며 버텨내는 것은 들판에서 무르익어가는 자식 같은 농작물에 대한

포기하지 못하는 사랑 때문이리라

위가 불편해서 먹지 못해도
기력이 없어 활동하기 버거워도
아픈 게 아픈 것이 아니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익어가는 벼를 보며
무성 해지는 콩을 보며
깨를 털고 고추를 말리며
할 일 많은 그곳에서 힘을 얻나 보다
우리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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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슬 맞으며 논에 갈 때

한낮에 벼 이삭 살피러 갈 때

해 질 녘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집에서 논밭으로 오며 가며

쉴 새 없는 움직임 속에서

크고 강하게 삶의 의욕이 생겨나는 곳


어쩌다 한 번 걷게 되는 길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나에게는 산책길이지만,

보이지 않아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들을 키워내는
그곳은 엄마의 삶의 현장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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