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 않게 결혼하는 것도 효도라 생각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해야지, 마음먹었다. 결혼하기 좋은 그 적당한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일하고 노는 것이 좋았던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를 하기 위한 결혼 계획을 세운 것이다.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물여덟이 되자마자 좋은 사람을 소개받았다. 별 볼 일 없는 나와는 다르게 능력 있고 성실한 남자를 만났다. 그때 당시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였으니, 적어도 먹고사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효도하겠다고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결혼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준비하지 못했다. 살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 채로 대책 없이 결혼을 했고 일하는 것이 좋았으니 직장생활도 계속 이어갔다.
계획한 나이에 결혼했고 겁도 없이 시댁으로 들어가 살았다.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요리와 살림살이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시부모와 함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댁에게 가장 큰 문제는 먹는 것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는데 먹는 것은 직접 해야 했으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밥솥이 해 준 밥을 차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으니 시댁살이 첫날부터 고역이었다. 이럴 때는 정면승부가 답이다. 솔직하게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고백하고 시어머니 찬스를 쓰기로 했다. 그때부터 시댁에서 사는 동안 주방에서 나의 역할은 시어머니 보조와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육수를 어떻게 내는지 몰랐다. 비 오는 날 고소한 호박전이 먹고 싶다고 해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시어머니가 나서야 했다. 흔하게 먹던 김치부침개마저도 내가 하면 늘어지고 찢어져 맛도 없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는데, 시어머니표 부침개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아이들의 최애메뉴가 되기도 했다. 감자와 고구마, 두부까지도 맛있게 부쳐내는 손맛이 없었으니, 나에게 주방이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남의 공간이었다.
시댁살이 7년 후, 분가를 했다. 이제는 시어머니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서 먹는 일을 감당해야 했다. 직장생활을 핑계로 늘 도움만 받고 살았으니, 직접 해보지 않은 요리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비싸고 좋은 재료를 사서 맛없는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토록 효용성이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실패한 요리를 볼 때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친정엄마는 계절마다 잘 가꾸어 수확한 농산물을 보내주신다. 호박, 감자, 양파, 고구마 시금치 등등 식생활에 필요한 재료들이다.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지 그저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선다. 좋은 재료를 잘 활용하지 못할까 봐 염려스러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와~ 이걸 누가 다 먹어?"
"그러게, 많이도 보내셨네"
"할머니표 감자전 먹고 싶다"
"할머니표 호박전 먹고 싶다"
친정 엄마가 보내주신 감자와 호박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아들 딸은 어릴 때 먹었던 할머니표 감자전과 호박전 두부 전 김치부침개 맛을 잊지 못한다. 엄마가 할머니 손맛을 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엄마의 능력 밖의 일이다. 가족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도리 없다. 한때 심각하게 고민하며 할머니 손맛을 흉내라도 내려면 요리를 배워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여전히 요리는 어렵고 주방에 들어서면 자신 없고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요리는 요리 인플루언서가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는 것이다.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주부 9단 요리사 덕분에 먹고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맛은 보장할 수 없어도 그럴듯하게 해내고 있으니 얼마나 큰 발전인가?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재주는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요리하는 손맛은 없어도 요리 못하는 일상을 글로 버무려 낼 수 있는 재주를 주셨으니 오히려 감사하다. 이번생은 손맛대신 글맛으로 나만의 글범벅 맛을 계발해야겠다. 주방에 서면 자꾸 작아지는 모습대신 글맛 제대로 살리는 또 다른 내 모습을 기대한다.
매거진 <살림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어>는 글 쓰는 주부의 살림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살림, 작가들이 살린, 작가들을 살린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는이모 @Jina가다 @치유의 하루 @미칼라책방 작가님들의 매거진도 방문해 보세요!
이미지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