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파래무침이 먹고 싶어요

어쩌다 작가의 먹고사는 이야기

by 단미

엄마 손맛에 길들여진 남편은 분가 후에도 한동안 그 음식을 맛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어떤 음식을 하고 있으면 예전에 먹었던 엄마의 손맛을 요구하곤 했다. 엄마가 해준 된장국, 김치찌개, 칼국수, 콩국수, 비지찌개 등등.. 진한 맛을 추구하는 시어머니 음식과 싱겁게 하는 나의 음식은 간을 하는 것부터 달랐다. 진하게 간이 된 음식에 입맛이 맞춰진 남편은 싱겁기만 한 아내의 음식은 그저 맛없는 음식일 뿐이었다.


일하느라 음식을 할 기회도 많지 않았지만, 내가 하면 맛이 없다는 핑계로 요리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시댁에서 함께 사는 동안 요리는 어머님이 담당하셨고 며느리는 그저 보조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결혼하고도 요리를 배우지 못하고 의지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요리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일이 되고 말았다.


결혼 후에 알게 된 음식 중에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낯선 음식도 꽤 있었다. 지역적인 특성으로 같은 음식이어도 다르게 먹던 음식도 많았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먹던 음식 중에 낯설지 않았던 것은 칼국수였다. 같은 칼국수라지만 친정 엄마가 해준 칼국수는 바지락 같은 조개류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있는 칼국수였다. 말간국물은 깔끔한 맛이었고 손으로 밀어서 만든 하얀 면발은 쫄깃한 맛이 최고였다. 결혼 후 시댁에서 먹는 칼국수는 호박과 감자와 바지락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칼국수였다. 감자가 들어가서인지 국물이 마실 수 있을 만큼 말갛지 않고 걸쭉한 느낌이었다. 똑같이 손으로 밀어서 만든 국수가락 느낌도 달랐다.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운 면발이었다.


친정에서는 국수 하면 칼국수를 떠올리지만, 시댁에서는 국수 먹자고 하면 잔치국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잔치국수를 먹어보고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월이 지나고 그 맛에 익숙해진 지금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 시절 국수만 해도 요리법도 다르고 맛도 달라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른 음식 중에 처음 먹어본 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파래무침이었다. 무채를 썰어 넣고 파래와 버무려 새콤달콤하게 무쳐서 먹었던 그 맛은 새콤한 음식을 좋아하던 내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시댁식구들은 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가 해준 파래무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또 먹고 싶어서 기다려도 식탁에 올라올 기미가 없었다.


어느 해 봄이었을까? 뭘 먹어도 입맛이 돌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도통 뭘 먹어도 맛이 없었고 먹는 것이 부실하니 기운도 빠졌다. 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입맛도 살리고 기운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날을 보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뭐라도 먹고 싶은 것을 해서 맛있게 먹고 기운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요리와 별로 친하지 않았으니 그러지 못했다.


출근해서 일하면서 문득, 어머님이 해주신 파래무침이 생각나면서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하루종일 지워지지 않고 맴돌았다. '아, 파래무침을 먹으면 입맛이 살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 당시 어머님은 어려운 존재였다.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해 주시는데 뭐가 먹고 싶어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기에는 염치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살림과 육아에 대해 항상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을 안고 생활하던 시기였으므로 감히 '파래무침이 먹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시간이 다가와도 파래무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머님이 해준 파래무침만 먹으면 기운이 솟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저예요 어머님"

"그래, 무슨 일이냐?"

"어머님 저 파래무침이 먹고 싶어요"

"갑자기 웬 파래무침이라니?"

"그러게요, 호호호. 저녁에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알았다, 해 놓으마"


엄청난 용기를 내어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파래무침, 그게 뭐라고 그렇게 어려워했을까? 용기를 낸 덕분에 그날 저녁은 파래무침에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파래무침을 준비하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닐 만큼 손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먹고 싶다고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며느리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일이었다. 입맛이 살아날 만큼 맛있게 잘 먹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니, 어머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고작 먹고 싶다고 해달라는 것이 파래무침이라니?"

"파래무침이 정말 먹고 싶었어요"

"결혼하고 먹고 싶은 거 해달라고 한 것이 처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니?"

"하하~ 그런가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다 해달라고 해라"

"네~"


남들에게는 사소한 음식일지라도 간절히 먹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은혜로운 음식이 되어주기도 한다. 오래전, 시어머니표 파래무침은 내 입맛을 살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에 존재하던 어려움이라는 벽을 허물어 준 계기가 되었다. 무뚝뚝하고 어렵기만 한 시어머니는 그 후로 뭐가 먹고 싶은지 묻기 바빴다. 애교 없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무뚝뚝한 사랑을 받으며 그때도 지금도 당당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입맛을 살려준 어머님의 파래무침 비법을 제대로 전수받아야겠다.



ps..

매거진 <살림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어>는 글 쓰는 주부의 살림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살림, 작가들이 살린, 작가들을 살린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함께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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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이지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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