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대로 먹을게

어쩌다 작가의 먹고사는 이야기

by 단미

"오늘도 야근입니다. 국 데워서 저녁 챙겨 드세요."


한때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한 가지는 '국 데워서 애들이랑 저녁 챙겨먹어'였다. 그 말은 맞벌이부부를 하면서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혼자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들 데리고 가서 저녁을 챙겨 먹는 일이 그토록 싫었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이니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출근해서 야근하고 다시 출근하고 야근하는 일상이 꽤 오랫동안 반복되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남편이 맡아서 봐줘야 했다. 한 달이 넘도록 그런 생활을 해야 했으니, 엄마가 야근하는 달이 다가오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야근하고 돌아와, 다음날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저녁까지 준비해 놓아야 하루일과가 끝난다. 어린이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엄마가 데리러 오지않으면 울기 일쑤다. 아빠를 보자마자 울어버리면 선생님 보기가 민망하기 그지없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서 겨우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그렇게 듣기 싫었던 '국 데워서 저녁 챙겨드세요'라는 말을 되시기며 아이들 저녁을 챙긴다. 퇴근하고 보면 아이들은 제멋대로 늘어져 자고 있고 피곤에 지친 남편도 그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먹이고 사는 일이 숙제처럼 버거웠던 시기였다. 일에 지쳐 힘들기도 했지만 살림에 어설픈 엄마는 매일매일 아이들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 일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아내가 요리를 못하면 남편이라도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을 해봤으면 좋으련만, 그 또한 요리에 관심이 없었으니 어설픈 살림이라도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일이었음에도 매일 빼놓지 않고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 출근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굶어도 아이들은 먹여야 한다는 생각하나로 애쓰며 보낸 시절이었다. 엄마밥이 최고라는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어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정성만은 최고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았을까? 크나큰 목표를 두고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대단한 일을 하느라 모두가 힘들게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것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상이었다.




요즘은 '국 데워서 저녁 챙겨 먹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다 자란 아이들은 알아서 먹고 다닌다.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남편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내보다 더 열심히 요리한다. 맛은 그때그때 다른 개성 있는 요리가 될지라도 바로바로 요리해서 먹고사는 일상을 보낸다.


먹고사는 일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쉽지 않은 숙제다. 누군가를 먹여야 하는 숙제는 벗어 낫으니 이젠 나만 잘 먹으면 될 일이지만 가끔, 남편을 먹여야 할 경우가 있다.


"뭘 먹을까?" 물으면

"주는 대로 먹을게"라고 대답한다.


오래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던 시절에 들었던 '국 데워서 저녁 챙겨 먹어'만 아니면 된단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말이었을지라도 그렇게 먹이고 키우고 살아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지 않을까?


크나큰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살았는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시절 그 순간은 최선을 다한 시절이었다. 어설프게 살림하고 부족한 듯 먹이고 키우며 갈등하는 중에도 일을 놓지 않았으니, 먹고사는 일만큼이나 내가 하는 일이 좋았나 보다.




살면서 좋아하는 일 하나쯤 있어야 힘든 일도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먹고사는 일이었지만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듯이, 이제는 먹고사는 일과 상관없이 그저 즐기며 좋아하는 일 하나쯤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해 온 일만큼이나 집중하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일, 내가 찾은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먹이는 일은 어설펐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는 쓰는 삶은 멋지게 꾸려보고 싶다.




ps..

매거진 <살림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어>는 글 쓰는 주부의 살림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살림, 작가들이 살린, 작가들을 살린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함께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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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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