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면허 30년째
"다음 주말에 어디 갈까? 가고 싶은데 있으면 말해, 다 데려가 줄게"
"정말? 그럼 산정호수 가자"
무슨 배짱인지 남편에게 큰소리쳤다. 배짱부리듯 이번에는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것이리라. 주말이 되니 남편은 정말 갈 거냐고 묻는다. 사실, 주말이 되니 하기 싫은 마음이 반쯤 올라온 상태였는데 진짜 하겠냐는 듯 묻는 남편 질문에 오기가 발동한다.
주차장 도착 후 운전석에 앉았다. 평소에 무심했던 차 기능에 대해 묻는다. 시동 스위치를 확인하고 왼쪽 오른쪽 깜빡이와 비상등을 눌러본다. 브레이크페달과 엑셀레이터 위치를 확인한다. 드라이브와 주차기어를 확인하고 안전벨트를 맨다. 내비게이션에 산정호수 가는 길을 묻고 가장 긴 코스를 선택하고 출발한다.
여느 때 같으면 늘 조수석에 앉아 편안하게 목적지로 향했을 테지만 직접 운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갑자기 왜 운전을 하려고 하냐며 의아해했지만 더 늦기 전에 혼자서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었다.
그동안 몇 번의 시도는 있었지만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하다가 그만두기를 몇 번, 굳이 해야 하나? 하지 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했고, 운전이 필요할 때는 남편과 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굳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스물여섯, 직장생활 3년 차였다. 면허시험제도가 어려워지고 운전학원 비용도 비싸진다는 소식에 면허증을 발급받아야겠다 생각하고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당장 차도 없고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면허증을 따 놓으면 언젠간 써먹을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론 시험을 통과하고 정해진 실기시간을 이수하고 시험에 도전했다. 그 당시 스틱이었던 차량으로 시험을 봐야 했는데, 클러치 사용이 익숙지 않아서 언덕을 통과하며 자꾸 시동이 꺼졌다. 언덕을 넘지 못하고 연속해서 두 번을 탈락했다. 세 번째에 겨우 통과되어 합격했던 뿌듯하고 기분 좋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렇게 면허시험장의 덜덜거리던 차량으로 2종 보통면허증을 취득했다.
2종면허증을 취득했으나, 그 후 10년 동안 신분증으로 사용되었다. 운전을 하지 않았으니 사고 없는 운전자가 되어 1종으로 자동갱신되어 발급받았다. 10년이 지난 후 갱신된 면허증을 보니 운전이 하고 싶어졌다. 다시 운전학원에서 도로연수를 받았다. 지금은 운전면허취득과정에 도로연수가 포함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면허시험장 내에서만 시험을 보던 때였다. 그러니 운전을 하기 위해서 도로연수 비용을 지불하고 연습을 해야 했다. 몇 번의 도로연수를 진행했지만 실제로 운전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일상에서 운전할 일이 생기지 않으니 일부러 운전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운전대를 잡을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10년이 흘렀다. 운전에 대한 미련은 10년 주기로 나타나는 건지 다시 도전하고 싶어졌다. 몇 번의 도로연수 경험이 전부인데 운전할 수 있을까? 큰맘 먹고 차를 끌고 도로에 나서보았다. 직진본능은 살아있었으나 차선변경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감했다.
주말 오전, 남편과 함께 가까운 산에 올랐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짙게 푸르러진 산을 보며 마음도 기분도 풍요로워졌다. 하산길에 주택가를 지나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주차장에서 생기 가득한 새댁이 운전석에 앉아 주차를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다시 뺏다 뒤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백미러를 보다가 운전석 유리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뒤를 살피기도 하면서 주차를 위해 애를 쓴다. 반복하며 해내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면서 그 순간 내가 보였다.
차선변경의 난감함에 부딪혀 다시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 나도 운전하고 싶어 했지. 주말오전 주차하던 새댁의 모습을 보며 예전의 열망이 살아났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운전이다. 가장 긴 코스를 선택한 산정호수길을 운전하며 난감했던 차선변경도 거뜬히 해내며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토록 난감했던 차선변경이 30년이 지난 지금은 왜 이토록 쉽게 되는 걸까, 뭐든지 다 때가 있는 건가? 숙제처럼 담아두고 있던 운전열망을 일깨워준 주차장의 새댁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