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내지 말았어야 했다.
갈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였다.
아침 6시 출발, 설악에 도착하니 정말 예쁜 하늘이 반겼다. 높고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들뜨고 기분이 좋았다. 준비를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푸르름 가득한 우거진 숲길은 상쾌하고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오르는 동안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도 좋았다.
오색은 계단이라더니, 오색찬란한 계단의 끝판왕을 보았다. 그나마 돌계단이었으니 망정이지..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는 도봉산과도 닮았다. 갈수록 가파른 길로 이어진다. 일행들과 출발은 같았으나 어쩔 수 없는 간격이 벌어지고 선두도 보이지 않고 후미도 보이지 않는다. 설악을 혼산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꾸준히 오른다. 가끔은 서서 하늘도 보고 물소리도 듣고 나처럼 쳐진 다른 분과 같이 쉬기도 하면서..
오색에서 대청봉 가는 길은 트임이 없다. 오직 하늘과 나무들만 보이는, 숲을 보며 걷고 쉬면서 하늘을 보고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길, 여름 산행이었지만 우거진 숲길은 그늘을 주었고 보이지 않는 계곡에서는 바람을 보내주어 덥지 않아서 좋았다. 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에 도착하겠지.
하지만, 오르다 기다려주고 가다가 내려와 주고 중간중간 만나 함께 하는 산행, 이건 산행인지 민폐인지 알 수 없다. 거기에 발목까지 아파온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후회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도 가면서 할 것은 다 한다.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쉬기도 하고 내려오는 사람과 인사도 하고 혼자 오르는 사람과 같이 오르기도 하고, 그렇게 결국은 정상에 도착했다.
대청봉, 사진에서만 보던 정상석을 보니 반갑고 뿌듯하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사람들, 힘들어서 안 온 걸까 이미 다 내려간 걸까, 다른 유명산에 비해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이 적어서 의외였다.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공룡능선의 자태에 반하고 저 멀리 울산바위까지, 깊은 산세와 웅장함을 안고 있는 설악,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와~ 감동을 소리로 전하며 인증샷을 찍기 바쁘다. 마지막으로 후미까지 도착하고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인증샷을 마치고 배고픔을 달래러 자리를 잡았다.
늦은 점심, 모두가 배고파 허겁지겁 먹기 바쁘다. 아침 일찍 서둘러 주먹밥 하나로 시작해 늦은 점심이니 오죽 배고프랴, 여기서 또 미안했다. 바리바리 싸온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다들 그리 잘 오른다. 모두가 선수들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든든하게 먹고 하산길에 올랐다. 한계령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오색 주차장에 있는 주차한 차량 관계로 한 명만 오색으로 하산하고 우리는 한계령으로 출발, 이제는 좀 수월하겠지,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끝도 없는 나무터널과 너덜길에 분명 하산길임에도 오르막이 계속된다. 끝났겠지 싶으면 또 오르고 또 오르고.. 지치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발목도 아프다. 아픈 발목에 힘을 못주니 다른 발이 또 문제다. 서두름을 포기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엉덩방아에 아프고 손이 멍들고 부어오른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다. 일몰 56분 전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뜬다. 곧 어두워질 거란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이제는 없다는 오르막, 계속해서 꾸준히 오르막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우리는 설악산 야등의 맛을 보고 말았다. 오색찬란한 계단은 한계령까지 이어져 지겨울 만큼 이어졌다. 끝나는 지점까지 계단일 줄이야~
늦어져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대신해야 했다. 오며 가며 운전하느라 고생한 친구에게 고맙고, 끝까지 뒤를 보살피며 이끌어준 친구에게도 감사함을 전하며, 모두에게 도움되지 않는 무모한 도전은 한 번으로 끝내야겠다고 다짐하며, 가보지 못할 설악을 볼 수 있게 함께 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원정 산행은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늦게 귀가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산행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서 가끔은 이렇게 무리한 산행을 하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해서도 안 되는 일, 산행은 본인의 페이스대로 꾸준하게 오르고 내려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힘든 산행이었지만, 설악은 설악이더라.
나, 설악 다녀온 여자야~
꾸준함으로 한계를 극복한 나란 여자,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