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학교 수업 전면 온라인 대체
서울로 대학교를 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골에 있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당시에는 별거 아닌 듯했지만 지금 보면 이 점이 참 좋다.
석양이 질 무렵에 엄마와 나는 항상 산책을 한다. 세 마리의 강아지와 정체불명의 새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도착지인 강물까지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마지막이라 더욱 붉게 타오르던 해는 어느새 저물어 간다. 어둠이 찾아와도 강아지의 방울 소리가 있었고 엄마의 따뜻함이 있기에 나는 산책 시간이 행복했다.
주말에는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간다. 지금 기억나는 나물 이름은 몇 가지 없다. 매일 들어도 잊어버리고 몇 번씩 봐도 다른 풀을 뜯어오는 나다. 고들빼기와 냉이는 상식이지만, 미역취, 그리고 미역취, 그때 뜯은 미역취 말곤 모르겠다. 이미 나물 캐는 계절은 끝나버렸기에 내 기억도 마감한 것 같다.
저녁에는 엄마 아빠. 사실 언니도 있는데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다. 언니가 없어서 가족의 완전체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작은 가족이 만들어진다.
그럴 때가 있다. 출출한데 라면 하나는 많을 것 같고 안 먹기에는 아쉬울 때. 나는 그런 날마다 아빠를 찾는다. 먹을 것에 있어서는 아빠는 항상 오케이니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딸의 말은 다 오케이인 것 같다.
그렇게 작은 가족이 같이 밥을 먹고 각자의 할 일을 한다. 밤이 되면 함께 잠이 든다. 별거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별거 없음이 좋았다.
가족에게서만 나오는 이 온기를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색으로 말하자면 노랑과 갈색의 사이일 것 같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은은하게 퍼지지만 절대 끊기지 않는 무언가가 있고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나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에 기뻤다.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자 너무나 소중한 것인데도 말이다.
엄마와의 산책, 어디서 뻗어 나온 풀을 뜯어 엄마 눈앞에 펄럭이는 것, 그것은 미역취가 아님을 확인받는 것. 출출할 때는 이제 라면 반 개가 남게 된다는 것, 집안에 펼쳐지는 포근한 공기. 그 공기는 비밀스러워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도 없는 오직 가족과 있을 때만 흐른다는 것.
바로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더 많은 시간을 안겨준 거나 다름없다.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향하기 위해서 꿈보다 더욱 소중한 것을 잠시 잃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발걸음을 떼지 않을 수도 없는 ‘서 있는 사람’이 되곤 한다.
2020년은 아무런 방해 없이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 듯했다.
그리고 2021년 다시 또 전면 온라인 대체.
그렇게 여전히 나는 시골이다. 2020년이 끝은 아니었나 보다. 흙먼지 풀풀, 비료 냄새 풀풀인 이곳을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좋다. 그냥 좋은 것 같다. 내게 한번 더 주어진 마지막 시간, 2020년보다 소중하게 쓰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