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따사로움을, 새벽엔 감미로움을 마셨습니다.

by 미미빵집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시 전공을 하시던 두 분의 교수님이 계셨다. 둘은 시라는 같은 문학 장르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곤 했다.


먼저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시를 쓸 땐 술을 마시면 안 돼요.”

또 다른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술을 마시면 안 읽히던 시가 보이기도 해요.”

그들은 ‘시’와 ‘술’이라는 같은 명사 그리고 이 두 명사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두 분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신이 내린 결론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두 확신 중 확실함에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확실함이 있기는 한 걸까. 흥미로웠다.


학과 특성상 글 쓰는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 취미가 이러하여 지금도 글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글을 좋아하는 나도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몇 시간을 앉아있었는데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한 글자도 적어 내리지 못할 때, 그럴 땐 정말 술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롯한 나의 예술은 누군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아닌 무언가의 도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 그 무언가가 술이 되지는 못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와인 한 모금을 마셔보기로 한다.


두 교수님 중 한 분의 말씀은 정답일 수밖에 없었고, 그건 뭐라도 된다는 것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혀끝으로 시작한 와인이 입안을 둥그렇게 맴돌 때, 어떠한 글자가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 그리곤 다시 혀끝으로 마무리되어 버린 와인을 느끼며 깨닫는다. 정말 교수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고. 시를 쓸 땐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노트북 전원을 끄고 오늘을 종료해버린다.


다음날이 오면 어제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또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며 좀 전의 새벽을 떠올려본다. 술을 마신 후에 글이 써지고 안 써지고는 어쩌면 중요한 게 아닐 수 있음을. 술을 마시며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로써 고요한 순간을 벗어나 잠시만이라도 무언가에 기댈 수 있었다.


사실 글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그런 것 같다. 힘들어서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땐, 잠시 쉬어갈 용기도 필요하다. 끝없이 혼자라고 생각될 땐 무언가에 기대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무언가가 새벽의 와인이든, 새벽을 떠올리며 마시는 아메리카노든.


어쨌거나 결론은

두 교수님의 말씀은 모두 옳았음과 동시에 모두 옳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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