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했다. 피신했다. 비로소 나는 안녕하다.

by 미미빵집

문득 도피라는 단어가 궁금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도망하여 몸을 피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질 때, 도피를 한다. 방금 문장의 주어를 ‘우리’라고 붙였다가 다시 ‘나’라고 바꿨다가 그냥 생략하기로 했다. 우리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는 그렇다. 나는 도피를 한다.

반대로 내게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을 때, 도피를 한다. 이 문장 역시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더라도 우선 나는 그렇다. 이때도 도피를 한다.


엄청난 곳으로 도망치지는 않는다. 아직 그러한 깡다구를 가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만의 도피 방법 중 하나는 글쓰기다. 적어도 글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때때로 어렵게 다가오더라도 감당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글은 창작할 수 있었다.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나에게만은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었다. 나는 글을 썼고 그렇게 글 뒤로 몸을 피했다.


물론 나의 글 쓰는 행위들 전부가 도피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쓰고 싶어서 쓰고, 쓰기 싫어도 쓰고, 도피에도 쓰이는 것. 글 쓰는 여러 이유 중 한 가지가 도피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러한 생각을 요즘 들어서 하고 있다.


도피를 찾다가 우연히 도피의 유의어를 알게 되었다. 피신. 피신이란 ‘위험을 피하여 몸을 숨김’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위험했었나 보다. 숨고 싶었나 보다. 숨을 곳이 필요했나 보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나 보다 라고.


글쓰기는 별다른 이유 없이 좋았다. 편했다. 편하면서도 바빴고 그래서 더 좋았다. 좋은 걸 하니 행복했고 행복했기에 다시, 좋았다.

도피였든 피신이었든 그 무엇이 되든 상관없을 것 같다. 위험으로부터는 안녕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 더는 상관하지 않기로 하자.

안녕, ‘아무 탈 없이 편안해야 한다’는 것. 아무 탈 없기로 하자. 그렇게 편안해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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