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버스 Jan 11. 2024

너무나 가고 싶었던 나이트클럽


혜원언니

제가 대학교 신입생 때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게 뭔 줄 아세요?

90년대 유명했던 줄리아나, 오딧세이 나이트에서 밤새 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거였어요

그 당시 돼지엄마 찬호박 등 유치하게 호명되는 웨이터들 많았잖아요 

그들에게 손목이 붙들린 채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옮겨가며 부킹 했다는

같은 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드라마에 나오는 나이트 장면이 생각나 마구 설레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방에서 

우리도 나이트 한번 가야지 않겠느냐며 동기들이 말했어요 

선배 언니들에게 같이 가자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더라구요.

일주일이 어떻게 갔는지 몰라요

웬 종일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머리는 어떻게 하고 갈까? 신발은 뭘 신어야 하나?

그날의 멋진 하루를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당일 아침 저는 거울 앞에서 세시간 넘게 서있었어요 

드라이하면서 두꺼운 롤빗으로 헤어 스타일링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머리를 감고 또 다시 만지고, 

머리손질만 몇 시간씩 했던 거 같아요 

작은언니가 새로 구입한 티셔츠도 어렵게 허락 받아 챙겨놓고 

친구들에게 짧은 치마도 빌려서 준비해 놓았지요   

방안 가득 옷들을 펼쳐 놓고 

거울 앞에서 이런저런 코디를 해보았지만 빌린 옷들은 저와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늘 상의의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티셔츠 안에 메리야스 까지 챙겨 입는 등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차림으로 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결국은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 최고의 코디다 라는 생각으로 준비를 마쳤어요 


처음가본 이태원은 정말 화려했어요. 

번쩍번쩍한 네온사인 간판은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어요 

외국인들도 많고 텔레비젼에서 볼법한 멋쟁이들은 다 이곳에 모인 거 같았지요. 

이태원 캐피털 호텔입구 앞에 친구들이 보였어요 

친구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 맞아? 할 정도로 

머리모양과 옷 차림이 호화로웠어요 

가슴이 깊게 파인 셔츠에 속옷이 보일 듯 말듯한 짧은 치마 

여러가지 보석과 찡이 박힌 청자켓, 하늘하늘한 나시 원피스

정수리 한가운데 높이 묶은 머리 , 버스손잡이 같은 커다란 링귀걸이 

모두 작정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거 같았어요

성의 없는 듯 소박한 옷차림의 저는 그들에게서 당연히 겉돌 수 밖에 없었고

티 내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나이트에서 저와 거리를 두는 듯 했어요 

얘 우리 일행 아니에요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혜원언니!

제가 기대 했던 멋진하루. 

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얼추 상상이 가시지요 

맞아요, 

친구들이 웨이터 손에 이끌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이룸 저룸 불려 다니며 부킹하는 동안 

저는 한번도 그들에게 붙들려 나가지 못했어요

초반엔 흥겨운 음악에 신나게 춤추며 놀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두번 하니까 힘들고 재미 없더라구요 

9시부터 새벽1시까지 외롭게 혼자 테이블을 지켰어요 

 부킹갔던  친구들이 자리로 돌아오면 

잘 갔다 왔어? 어땠어?” 라며 어색한 미소로 질문을 했지요.       

친구들은 과장되게 얼굴을 찡그리며 미안해 하는 어투로 

야~ 완전 똥밭이야! 별로야 별로 !” 라며 이야기 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어땠느냐며 낄낄 거리며 지들끼리만 이야기 했어요 


새벽 2시 우리는 밖으로 나왔어요 

친구들은 나이트에서 만난 남자들과 2차를 간다 했어요 

저는 거기에 따라갈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어요 

너무 늦었다며 부모님의 삐삐가 자정부터 계속 울렸다고 가봐야 겠다 말했지요  

그런 나에게 같이 가자! 라고 말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모두 어서 저 애를 보내야겠다는 듯 빠르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어딜가야 하지?!” “홍대로 가까!”! “신촌으로 갈까!”

2차 장소를 정하는 소리가 등뒤에서 매우 크게 들렸어요 

저는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신호등 불빛이 초록불로 바뀌기도 전에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넜어요 


일주일간 손꼽아 기다리며 

그토록 가고 싶었던 나이트. 

멋진 하루를 만들려 했던 그날은 저에게 최악의 하루가 되었어요 

드레스 코드 맞춰서 옷 좀 이쁘게 신경써서 입고가지? 라는 말은 사양하겠어요 

그날 저도 몇 시간 동안 나름 최선을 다한 결과가 

그렇게 되리라곤 예상 못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숨기고 싶은 저의 흑역사 인데 

너의 멋진 하루를 묻는 질문에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네요 

그리고 편안한 언니에게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하게 되었구요

언니! 긴 이야기인데 들어주어 정말 고마워요.

제가 밥 살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