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중반 신들리듯 주말이면 산에 다니던때
여자 넷이서 경기도 고대산에 갔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산
늦게라도 단풍을 보겠다고
서울과 가깝다는 산을 찾아갔는데
날을 잘못정했는지
단풍대신 갈색으로 바랜 상수리 나뭇잎 천지에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모두 초보 등산객이라 등산복은 커녕 등산화조차 갖추지 않은 우리는
1호선 동두천역에 내려 고대산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전까지도
이런 을씨년스러운 가을산의 풍경과
위험이 우리에게 닥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두시간 가량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고대산이란 곳은
평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고
공기가 좋아 나름 한적하고 산을 오르는 조용한 재미가 있었다.
정오가 지나 출발한 산
이야기도 하고
도시락도 꺼내먹고 오이도 꺼내먹고
계란도 먹고 밤도 먹고
산에 오르러 왔는지 먹으러 왔는지 ...
하여간 정상까지 오르겠다고 야무지게 마음먹은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움직였다.
2시간쯤 산을 올랐을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일행을 만나
정상까지 갈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 보았다.
두 내외는 얼마 안남았다고 다왔다라고 했다.
산에서 다왔다는 말
그리고 얼마 안남았다는 말은
등산객들이 하는 거짓말중 하나로 알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말을 믿고 그대로 정상으로 향했다.
한시간을 더 가니 오후 3시 반쯤
급하게 산을 내려오는 아저씨를 만났다.
정상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지금 정상 가면 내려올때 해가져서 어두워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해가 보이길래
아저씨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정상까지 가자! 이때아니면 언제 가보냐!라며
아까보다 더 힘차게 올라갔다.
잠시후
쌀쌀한 가을임에도 반팔을 입고 등산바지를 허벅지 까지 추켜 올린 아저씨가 나타났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지금 정상 올라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우리의 대답에 아저씨는
과장된 제스쳐로
"아~~ 지금 정상 올라가면 큰일나요 큰일나! " 라며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아저씨의 말투와 몸짓
그리고 저물어 가는 해를 보니
정상은 엄두도 못내고
그냥 빨리 내려가야만 할거 같았다.
너무 급하게 내려가서 였을까?
일행중 한명이 발을 접질렸다.
한시라도 빨리 산을 내려가야 하는데
부상이라니..
발목을 접질린 친구는 한발 한발 내딛는 데 매우 힘들어 보였다.
우리 셋중 그래도 가장 마음 좋은 친구가
다친 친구를 부축하겠다며 나섰다.
어둑 해지는 주변을 돌아보며
앞서 출발한 나와 또한명의 친구는
정신 없이 비탈길을 내려 왔다.
그때는 등산 초보여서
분기점에 매달린 등산 리본이 있는줄도 볼줄도 몰랐다.
산엔 우리 밖에 없는거 같았다.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는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내려오다 보니 뭔가 길이 이상했다.
분명 올라올때는 잘 다져진 흙길로 올라온거 같은데
소복하게 낙엽만 쌓여
커다란 바위와 돌이 섞인
굉장히 험한 길이 나타났다.
길이 험하든 험하지 않든 상관없이
주변의 어둠만을 의식하고 두려운 마음에
거의 굴러가다시피 산을 내려갔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내려가는 길이
길이 아니라
계곡이였음을 알아챘다.
이 와중에 우리보다 늦게 오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떨어진 일행의 이름을 계속 계속 반복해서 불렀다.
대여섯번쯤 크게 불렀을까?
저 멀리서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어두워서 전혀 방향을 알수 없었다.
겨우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감각만으로
네발로 기어서 산을 마구 올라갔다.
어느정도 올라가니 등산로에 도달했고
일행과 합류하여 우리는 다시 4명이 되었다.
달빛에 비춰 훤하게 보이는 등산로와
친구들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그자리에서 엉엉 올었다.
이제 달에 비쳐 하얗게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것이었다.
계속 걷다보니
까만 어둠속에서 마을의 불빛을 발견하고 거의다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내려가면 갈수록
아까 왔던 길을 다시 왔던거 같고
어떤 길은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올라가는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참고로 그때 당시는 스마트폰이 아닌 애니콜 폴더 전화기로만 움직였던터라
지금 처럼 gps 나 지도 이런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
시간은 7시 30분
산속은 캄캄했다.
우리는 119에 전화해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신호가 잡히지 않아 119와 겨우 전화 연결이 됬고
우리 위치가 대략 어느정도쯤 되느냐는 질문에
위치는 정확히 알수 가 없으나
산아래로 불빛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산 초입인거 같다라는 설명만 했다.
안내원은 우리 보고 조금만 기다리라 했다.
30분이 지나도 구조대가 오지 않자
우리는 평소 하지도 않던 간절한 기도로 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40여분이 지났을까?
저멀리 기다랗고 쨍하게 비춰지는 광선 3개가 여기저기 방향을 달리하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119 구조대!
무슨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듯 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넷이 방방 뛰고 함성까지 질렀다.
구조대가 타고온 차는
일반 구급차가 아닌 소방차 였다.
사실 그때 소방차를 첨 타보았다.
높이가 상당한 소방차에 몸을 싣는데
이렇게 소방차도 타보는구나라며
언제 걱정하고 울었냐는듯이 좋아라했다.
소방차 탔다고 유난을 떠는 우리를 향해
구조대 한분은
산 아래 다 내려와서 구조되서 얼마나 다행인줄 아느냐~
이곳은 철원과 가깝기 때문에
밤에 영하까지 내려가는데
그옷으로 새벽까지 버텼으면 아가씨들 얼어 죽을 뻔 했다~ !!"
라며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상기시켜줬다.
아.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살아서 이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그때 추위도 추위지만 산짐승 멧돼지라도 만났으면 어찌할뻔 했을까?
여튼 지금까지 반평생 넘게 살면서 사람 목숨 여러개임을 실감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