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은 아무튼 옳다
제목 : 시장이 좋다
난 엄마처럼 되기에 글렀다. 우리 엄마는 뭐든지 더 좋은 것, 큰 것, 알이 가득 찬 것, 신선한 것, 그런 것에 집착했다. 엄마가 계란을 사 오라고 시켰다. 나는 운동화를 구겨 신고 투정을 부렸다. 밑에 있는 아무 슈퍼에 들렀다. 알들을 쭉 살펴보다가 그중 제일 크고 깨끗한 것을 꺼냈다. 오르막길을 비틀거리며 올랐다. 계란 한판에 30개, 30개의 알이 출렁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건 두렵다. 내가 마치 암탉인 것처럼 거의 품고 올라갔다. 계란이 담긴 회색 종이, 그거 너무 물렁거리지 않아?
허벅지가 흔들리며 경련했다. 우리 집은 꼭대기에 있다. 언덕을 깎고 깎아서 만든 비탈길 쪽 빌라. 특히 여름에 오르는 건 죽을 맛이다. 하지만 계란을 무사히 옮기는 것에 성공했다. 대문을 열고 엄마를 찾아가 내가 사 온 계란을 보여줬다. 엄마는 계란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붙어있는 상표를 보며 혀를 찼다. 너 그거 요 밑에 있는 슈퍼에서 샀지? 응, 왜? 나는 당당했다. 나도 덜 힘들고, 계란도 빨리 들고 왔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자신했다. 엄마는 높은 톤의 목소리를 내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엄마는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면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시장에 가야지! 이건 특란이고 시장에 가면 대란을 판단 말이야! 화난 와중에 죄송하지만, 퍼덕거리는 날갯짓이 고추장 먹은 수탉처럼 보였다. 그래서 뭐 다시 사와?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고, 엄마는 다음에는, ‘다음에는‘을 두 번 말하며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시장에서 사와, 하여튼 시장에서 사와, 뭐든지 간에, 시장 물건이 좋아.
집 밑 슈퍼에서 한 10분 정도 더 걸으면 작은 시장이 있었다. 다양한 것을 팔았다. 김치, 시금치 무침, 무생채, 내가 싫어하는 반찬들을 팔고 있는 반찬 가게, 조금 더 들어가면 떡집이 있었다. 거기 떡집 정말 맛없다. 이건 엄마도 인정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채소 가게가 있었다. 정말 소박했다. 상자에 한 세 종류 정도의 채소만 팔았다. 시금치, 무, 열무. 시금치, 당근, 애호박. 시금치, 달래, 두릅. 하여튼 늘 시금치는 빠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거기서 시금치를 산 적은 없었다. 더 안쪽으로 가면 규모가 크고 깔끔한 채소 가게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그 채소 가게에서 뭐라도 하나 사 갔다. 사실 거기 귀여운 치즈 고양이가 눌러살았다. 이름은 호랑이였다. 쥐톨만한 게 호랑이라서 당돌했다. 꼬리도 짧뚱했다. 파닥파닥 꼬리를 흔들었다. 걔는 남자아이인데, 짧뚱한 꼬리 때문에 뽕알이 3개 있는 것같이 생겼다. 채소 가게 주인은 이 고양이가 자기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눕기 딱 좋은 베개 하나를 늘 옆에 뒀다. 그리고 호랑이는 거기서 자고 있었다. 엄마는 그래서 채소를 샀다.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라 좋았다.
그리고 그놈의 대란을 샀다. 특란 말고 대란. 엄마가 계란을 콕콕 집으며 나에게 말했다. 봐라, 야, 크기부터 다르지? 다르긴 했다. 조금 반성했다. 엄마가 대란 하나를 골라 들고 주인아주머니께 물었다. 이거 대란 맞지요? 엄마, 방금 그거 대란이라고 나한테 그랬잖아. 예예, 맞아요. 엄마가 대란을 품에 안고 낑낑대며 걸어갔다. 그냥 나 달라고 했다. 뒤뚱거리는 엄마 모습은 알을 품을 암탉보단 가랑이에 알을 끼고 다니는 펭귄에 가까웠다. 그럴래?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산뜻한 목소리로 내게 대란을 건넸다. 비틀거렸다. 그래, 그 엄마에 그 딸이니까. 나도 암탉보단 펭귄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엄마가 여기 채소 가게가 좋다고 간판을 가리켰다. 간판이 조금 세련됐다. 못된 고양이라고 쓰여 있던 2010년대 간판이 떠올랐다. 세련됐는데 세련됐었던, 그런 올드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그곳에 들어가서 반으로 잘린 무를 하나 샀다. 어떤 무가 좋은 무야? 엄마도 그건 잘 모른다고 했다. 하여간 큰 게 좋다고 했다. 큰 거, 깨끗한 거, 더 신선한 거. 그래도 무 중의 무는 겨울 무라고 말했다. 웃기네, 지금은 여름에 가까웠다.
무와 계란, 그리고 호랑이 구경값으로 산 흙 당근을 챙겼다. 우리는 낑낑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항상 중간쯤 올라갔을 때 엄마가 말했다. 바로 여기, 여기가 집이면 좋겠는데. 우리 한계는 딱 반개까지였다. 늘 조금 더 힘내서 위로 올라갔다. 물건을 이고, 비틀비틀. 뜨거운 열기가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 역시 시장보다 슈퍼가 좋았다. 거긴 에어컨이라도 틀어주니까. 엄마는 시장을 고집했다. 거기 것이 더 맛있다고 했으니까. 엄마 말이 맞다. 맞다고 할 수밖에. 엄마는 늘 더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만들어 내게 먹였고 역시 시장 것이 좋지? 라고 말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했다. 엄마한테 배고프다고 말했다. 앉아봐라, 반찬 이것저것 꺼내줄게. 나는 물건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계란 하나 구워줄까? 나는 응, 이라고 짧게 말했다. 툭툭 소리가 두 번, 그리고 경쾌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한 번 들렸다. 엄마가 얼른 이리 오라고 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이것 봐라, 쌍란이다. 쌍란은 처음 봤다. 나는 신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팔을 휘저었다. 고추장 먹은 수탉처럼, 아니 그냥 춤추는 암탉처럼. 엄마가 말했다, 그러면 저기 있는 거 모두 쌍란이다. 계란 두 판을 산 것 같다, 엄마에게 엄지를 올렸다.
역시 시장이 좋지?
응, 그렇네. 엄마 말이 맞아.
엄마랑 함께 시장을 가면 항상 혼난다. 왜 자꾸 실하지 않은 것을 사냐고, 나중에 나 없이 어떻게 살래? 라고 말하면 베시시 웃는다. 막막하긴 하다. 엄마만큼 무조림을 잘 만들지고, 좋은 고등어를 고르는 법도 모르는 내가 문득 엄마가 만든 음식이 먹고 싶어 발버둥 칠 때, 그때 엄마 말을 귀담아 들을걸- 하고 후회하게 될테니. 그땐 뭘 해도 후회하겠지. 잘해줄걸, 조금 더 대화할걸, 나도 밥을 만들어 줄걸, 여행도 많이 갈걸, 사진 찍을걸, 영상 찍을 걸.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엄마한테 실 없는 걸로 혼날 때가 행복한 거겠지. 언젠간 이 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 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