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보리수

The 주근깨 전쟁

by 미미




제목 : 어여쁜 보리수




보리수는 성난 복어처럼 볼을 부풀렸다. 때는 가을이 넘은 초겨울이었다. 보리수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선크림 전쟁'에서 벗어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엄마의 태도는 달랐다. 보리수가 선크림을 다 쓰고 난 후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고 성질을 부렸다. 보리수는 영문을 몰랐으나, 이내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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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에서 나오는 빛도 깨주박을 만들어!"


깨주박, 주근깨. 보리수의 얼굴은 하얀 우유 같았지만, 주근깨가 정말 많았다. 엄마는 기왕 딸을 미인으로 낳았는데 얼굴이 깨주박투성이인 것이 늘 한이 서렸던 것 같았다. 이미 생긴 주근깨는 어쩔 순 없지만 어떻게든 더 생기는 것만은 막아보겠다, 그런 일념으로 엄마는 선크림에 손을 댔다. 죽 짜서 보리수의 얼굴에 겹겹이 발랐다. 보리수가 괴로워해도 세 번을 불렀다. 10분 간격으로 선크림을 세 번 바르면 두꺼운 지층이 형성됐다. 보리수는 선크림에서 느껴지는 기름 같은 끈적임이 정말, 너무, 너무 싫었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니 이제 괜찮을 거라 안심했는데, 겨울도 안전치 못하다니. 엄마는 보리수에게 만원을 쥐여주며 집 앞 마트에 가서 선크림을 사 오라고 말했다. 숫자 보면 90이라고 적힌 것, 95면 더 좋고. 양 많은 거, 큰 거, 모르겠으면 점원한테 물어보고. 알겠다고! 보리수는 빨간 목도리를 둘러매고 떡볶이 코트의 단추를 잠갔다. 바깥은 제법 쌀쌀했고 옅은 구름이 볕을 가려주고 있었다. 엄마는 보리수에게 늘 말했다. 우리 보리수는 정말 예쁜데, 이놈의 깨주박, 이놈의 깨주박이 참 못났다. 엄마, 남자애가 나더러 딸기 같대.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화냈어? 보리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왜? 난 딸기 좋은데.


남자애들은 보리수의 관심이 받고 싶어 일부러 주근깨를 놀렸다. 보리수의 공식 별명은 딸기였다. 보리수의 참깨를 하나둘 세며 너무 많다고 얼굴을 구기는 남자애들과 투닥거리는 것이 보리수의 일상이었다. 보리수는 그 별명이 좋았다. 딸기는 귀엽고, 맛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보리수에게 잘해주는 것도, 선생님이 예뻐해 주시는 것도 전부 보리수가 예뻐서 그런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보리수도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엄마의 깨주박 잔소리를 피해 도망치면 결국 거울 앞이었다. 정말 이 주근깨만 없으면 백옥같이 하얀 피부가 두드러질 텐데. 빨리 화장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면, 수술할 순 없을까? 그래도 그 끈적거림은 정말 견디기 힘든데.


보리수는 마트 안에 들어가 세일하는 매장을 둘러봤다. 선크림은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초등학생인 보리수에게 뭐가 좋고 나쁜지 판가름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보리수는 핑크색 매장, 공주님이라고 불러주는 곳으로 들어가 점원을 불렀다. 점원은 예쁜 프릴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선크림 추천해 주세요, 점원은 친절하게 보리수를 안내하고 선크림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보리수는 듣는 둥 마는 둥, 옆에 있는 붉은 틴트 이름을 살폈다. 발랄한 오렌지, 수줍은 첫사랑 딸기, 이름들이 죄다 괴상하다고 느낄 때쯤 직원이 말을 걸었다. 공주님은 정말 예쁘네요, 엄마가 좋아하시겠어요. 아니요, 저희 엄마는 제 주근깨 때문에 맨날 불평인데요. 직원은 보리수의 얼굴을 찬찬히 훑더니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별자리 같고 예뻐요, 삐삐같이 귀여운데요?"


보리수는 직원이 추천한 선크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끈적거려요? 네, 아무래도 기능성 제품들이 좀 그런 면이 있어요. 그럼 안 살래요.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보리수는 배꼽인사를 하고 매장을 나갔다.

주머니에서 종이 스치는 소리가 사락거렸다. 귀가 간지러웠던 보리수는 귓속을 시원하게 긁었다. 무심코 옆을 돌아보니 맥도날드가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주문했다. 딸기 선데이 아이스크림 주세요. 몇 분 후 주문한 게 나오고 보리수는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여튼 딸기 맛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보리수가 구매한 제품부터 확인하려 했다. 아무것도 사 오지 않은 보리수에서 뭐 했어? 라고 물었다. 안 샀어. 대신 아이스크림 먹었어. 선데이 아이스크림도 어쨌든 선크림이잖아? 보리수는 말장난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사기 싫어서 군것질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보리수는 쏜살같이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 거울을 지나 침대 속으로, 이불을 꼭꼭 뒤집어쓴 보리수는 킥킥,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엄마가 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릴때, 난 예쁜 편이었다. 머리도 양갈래 삐삐머리였고 피부도 뽀얗고 눈도 새까맣고 둥글둥글했다. 그런데 진짜 주근깨가 너무 많았다. 엄마가 그걸 너무 싫어해서 선크림에 엄청나게 집착했었지. 나도 한동안 내 주근깨가 너무 싫었는데 어느 순간 내 주근깨가 좀 유니크하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심심한 얼굴에 별가루를 뿌린 느낌? 막 이러고~ 혼자서 칭찬하고 웃었더니 진짜 마음에 들어져서 지금은 내 챠밍 포인트이다. 주근깨는 더 심해져서 콧등이랑 팔에도 퍼졌지만 나는 만족한다. 내가 만족하면 그만 아닌가? 이쁘다, 이쁘다 하면 이뻐보인다. 그냥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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