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여자

단체살이는 어쩔 수 없나 봐

by 미미




제목 : 우는 여자




진주는 비누칠만 씻어내면 됐다. 그렇게만 하면 샤워가 끝났다. 하지만 항상 이 타이밍에 윗집에서 물을 썼다. 뭉친 거품이 진주의 둥근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눈꺼풀을 비집어 안으로 들어왔다. 진주는 크게 욕을 질렀다, 윗집이 설거지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진주는 알몸인 채로 한참 동안 비질비질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시원한 물줄기가 곡선을 그리듯 흘렀다. 에이 씨, 진주는 15분이면 끝날 샤워를 40분이나 했다며 성질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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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라는 지하수 대신 물탱크를 썼다. 진주가 알기론 그렇다. 원리는 잘 모르지만, 그래서 윗집부터 물을 쓴다고 했다. 진주가 사는 층은 2층, 3층이 1순위, 그다음 진주네 집이 2순위이었다. 1층은 자주 외박해서 불만이 없었다. 불만은 진주가 가장 많았다. 샤워 하다가 물 끊기고, 똥 싸고 물 내리려 하면 물이 내려가지 않고.


진주는 새벽만 되면 배가 아팠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오른쪽으로 기울면 진주는 떡볶이, 치킨, 족발 같은 것을 떠올렸다. 돈이 없다, 없다, 외치면서 야식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야식을 먹게 되면, 꼭 잘 자다가 4시쯤 눈이 떠졌다. 속이 답답해 설사할 것 같아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는 새벽이니, 이 시간만큼은 물 자유 이용권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진주는 편안하게 모든 것을 배출했다. 변기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상하다? 진주는 혼자 살고 있었다.


"얘, 내 말 좀 들어 봐."


진주의 등 털이 비쭉 섰다.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다음, 찬찬히 들어보니 윗집 사람이 이 늦은 새벽에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너무 잘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윗집엔 아저씨, 아줌마, 두 사람이 산다고 들었다. 아줌마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한지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해져 갔다. 듣고 싶진 않았지만, 아줌마의 사정을 이것저것 들어버렸다. 아저씨가 얼마나 바람둥이인지, 아줌마가 받는 하대, 어쩔 수 없는 사정. 진주는 뻘쭘했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은 편치 못했다. 이제 방에 들어가자, 진주가 변기 물을 내리려는데 흑, 흑, 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가 울고 있었다. 진주는 진짜 빨리 나가야겠다 싶어 물을 내리려는데 윗집에서 먼저 물을 내렸다. 울음을 가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진주는 타이밍을 잘못 맞춰 물이 역류할 뻔했다. 다시 물을 내리려 했지만 윗집에선 계속 쿠르릉, 쿠르릉, 흑, 흑,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그러니, 흑, 내가, 흑, 쿠르릉, 흑, 아니 난 괜찮은데, 흑, 쿠르릉, 그런데 그 양반, 흑, 쿠르릉.


“아, 씨발.”


..., 고요함, 진주는 조용해진 틈을 타 얼른 물을 내리고 침대로 들어갔다. 씩씩거리다가 이내 이불킥을 갈기고 베개를 퍽퍽 친 다음 잠에 들기 위해 애썼다. 아주 작은 소리가 흑흑,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귀신 소리 일수도, 아줌마가 아직 울고 있을 수도. 알 게 뭐야, 몰라, 절대 마주치지 말아야지.


다음 날, 진주는 꼼짝없이 윗집 아줌마랑 마주쳤다. 참외 트럭이 지나가길래 참외 좀 사려다가 딱 걸렸다. 아줌마가 멋쩍은 듯 웃었다. 많이 시끄러웠지요? 사람 좋은 웃음, 눈가 주름이 하회탈 같은 모습을 만들었다. 아줌마 얼굴은 처음 보는 거 같네. 정말 작고 착해 보이는 사람. 눈가가 시뻘게져 있었다. 진주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멋쩍게 인사했다. 참외 한 봉지에 양이 너무 많아서 아줌마랑 적당히 반띵했다. 언제 설거지하시냐고 여쭤보고, 그 시간은 피해서 샤워하기로 했다.








우리 집 빌라가 연식이 많이 됐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는데 윗집이 물을 사용하면 물 수압이 확 약해진다. 제일 열받을 때는 이제 헹구기만 하면 될 때, 수압이 낮아지면 미치겠다. 나 진짜 3분만 쓰면 되는데 윗집은 설거지를 20분 한다. 그럼 난 빨개벗고 20분을 멍때린다. 너무 열받아서 씨발이라고 욕을 했다. 소설처럼 변화는 없었지만 욕을 쓴 다음 깜짝 놀랐다, 내가. 이게 뭐라고 이웃간에 얼굴 붉힐 일이? 물을 나만 쓰는 것도 아니고. 그 뒤론 그냥 수압이 낮아지면 낮아진대로 쓴다. 단체생활이 이런거라고 생각하면서 차분해지려고 노력한다. 분노표출은 건강을 위해 필요하지만,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다. 아무튼 이웃들하곤 잘 지내고 싶다. 알고보면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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