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마였던 시절
제목 : 박여사와 오연진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식탁이었다. 당연했다, 아직 박여사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박여사를 위해 요리라는 것을 해봤다. 아마도, 사랑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귀찮아졌다. 당연한 순서였다. 찰보리를 섞은 윤기 나는 보리밥, 참기름을 머금은 시금치나물, 당근과 양파가 섞인 불고기, 잘 말린 생선을 구웠다. 냉장고를 꺼냈다. 요즘 밀키트는 참 잘 나온다. 나는 밀키트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밀키트 살 돈도 아까워지면, 난 편의점 도시락을 산처럼 쌓아뒀을까? 모르겠다.
띡, 띡, 띡, 띠리리, 철문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박 여사가 비틀거리며 집안에 들어왔다. 연진아! 연진아아아! 급히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검은 봉지를 들고 얼른 박여사에게 뛰어갔다. 박여사는 허겁지겁 봉투를 펼치더니 후드득 토사물을 쏟아냈다. 박여사가 낑낑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입을 헹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서 나온 박여사는 식탁으로 향했다. 국물은? 국물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박여사는 투덜거렸지만, 곧 숟가락을 챙겨 데워진 밀키트를 열었다. 덜 녹은 토마토 파스타를 덩어리째 씹고, 하얀 브로콜리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가 뜨겁다며 뱉었다. 박여사, 속은 좀 괜찮아? 박여사가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미친년 같은 그녀의 볶은 머리가 나풀거렸다.
박여사, 아니 박여사가 엄마였던 시절, 그때는 박여사가 밥을 챙겨줬다. 엄마였으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박여사는 홀연해 보였다. 사망보험금이 꽤 나왔다. 상대방 과실로 우린 피해 보상금도 받았다. 박여사는 그 뒤로 밥을 차리지 않았다. 셔츠도 다리지 않았고 설거지, 빨래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졸업한 것 같았다. 박여사가 망연자실했나 싶었다. 내 밥은 고사하고 본인 밥도 챙겨 먹질 않아서 내가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박여사가 소파로 기어가듯 걸어가 자리 잡고 앉았고 나도 그 옆에 앉아서 같이 TV를 봤다. 사람들은 박여사를 보고 아연실색했지만 내 눈엔 여전히 그녀가 투명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간 단단히 옥죄었을까 싶지만, 나에겐 그녀를 이해할 자격이 없었다. 박여사는 더 이상 내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박여사, 밥 잘 챙겨 먹어. 마르지 말고."
"그래."
"나는 내일 올라간다. 이제 내가 밥 못 차려."
"그래."
"나도 이제 딸은 졸업할까 싶어."
"그러던가."
박여사, 밥은 잘 챙겨 먹을까?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빈 그릇들을 생각했다. 저마다 쓰임과 모양이 다른 빈 그릇, 연잎처럼 하얀 탁자 위를 둥둥 떠다닐 모습. 그 모습을 상상하니 썩 괜찮았고 아무렴 배가 고프면 알아서 뭐라고 쑤셔 넣지 않을까 싶었다. 아주 가끔 이곳에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한동안 남이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가정폭력을 당했는데 특히 엄마가 아픈 몸으로 노동까지 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너무 받아 힘들어했다. 아무말 없이 티비만 보는 엄마만 보면 그냥 다 버리고 도망가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너무 착한 것도 문제다. 그냥 어느날 엄마가 사라져도 이해할텐데 싶었다. 엄마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엄마가 엄마여서 죄송하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지금 우리 생활은 많이 좋아졌고 문제의 근원도 사라졌다. 엄마는 행복해졌고 여전히 우리 엄마다. 엄마가 엄마라서 행복해보인다. 엄마는 여사님보단 미미네 엄마일때가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멋대로 위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