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
제목 : 가벼운 취미생활
토끼배찌는 '이거 마음에 든다!' 싶을 땐 당근마켓에 들어갔다. 동네 소식 게시판 안에는 다양한 동호회를 모집하고 있었다. 이번에 토끼배찌가 선택한 모임은 와인 사랑 동호회였다. 토끼배찌의 썸남이 데려다준 양식집의 하우스 와인이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끼배찌가 자판을 누를 때마다 짧은 고양이 소리가 야옹, 야옹 울려 퍼졌다. 소피아라는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가입비 만 원을 입금하면 금요일 와인 모임에 참여해도 된다고 말했다. 토끼배찌가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 고르릉, 고양이 울대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토끼배찌는 아껴둔 녹빛 원피스를 입고 모임에 참여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람들 대여섯 명이 모여 목소리를 높여갔다. 토끼배찌가 그 틈에 끼여보고자 아, 저기, 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가 토끼배찌를 힐끗 살피더니 구두 앞꿈치를 휙 돌렸다. 토끼배찌는, 마치 자신의 주위로 벽이 만들어지는 듯한 뉴비 배척을 느꼈다. 다행히 소피아가 그녀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희 신입이에요! 인사 나눠요! 마치 토끼배찌를 처음 본다는 듯 그제야 사람들은 표정을 풀고 토끼배찌와 스몰토크를 이었다. 토끼배찌는 후에 회상한다. 아, 이때 도망쳐야 했는데.
둥근 테이블, 잔을 받고 조금 기다리자, 화이트 와인부터 조금씩 돌렸다. 청량하고 새콤한 맛, 깔끔한 맛, 약간 달콤한 맛. 누군가 입을 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달아요. 그렇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에게 공감했다. 토끼배찌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의 색이 점점 붉어졌다. 사람들은 와인의 맛을 느끼며 엘레강스한 말로 맛을 표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 토끼배찌에겐 그렇게 보였다. 손을 휘저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쌓아가듯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은근슬쩍 말을 잘랐다가 다시 돌려받고, 와인의 색은 점점 검붉어졌고. 토끼배찌는 솔직히,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소피아가 토끼배찌를 툭툭 건들며 말했다. 토끼배찌 님은 바디감이 묵직한 게 취향인가요, 산뜻한 게 취향일까요? 토끼배찌는 어리숙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무튼 무거운 게 좋지 않을까? 묵직한 게 취향이라 말했다.
"그래요?"
시끌벅적한 와중에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토끼배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토끼배찌는 고개를 마구 흔들며 입술끝을 끌어 올렸다. 네, 맞아요. 묵직한 게 최고죠. 암요! 이야! 뭘 좀 아시는 분이 왔네! 모두가 그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가장 검붉은 술이 채워지고, 토끼배찌는 그 술을 입에 대자 기침을 쿨럭거렸다. 아니, 이건 왜 이렇게 써요?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온 혼잣말, 소피아가 그녀에게 말했다. 바디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아니, 전 바디감이 묵직한게 좋지 떫고 쓴 건 싫은데요.
"그게 바디감이잖아요!"
모두가 깔깔 웃었고, 토끼배찌는 입을 헹구러 간다고 말하곤 가방을 챙겼다.
한동안은 동호회를 멀리했지만, 이번 토끼배찌의 '이거 마음에 든다!'는 커피였다. 남자 친구가 데려다준 인스타 감성 카페 커피 맛이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토끼배찌는 직접 동호회를 개설하고 사람을 모았다. 3명 정도 되는 여성들이 토끼배찌에게 채팅을 보냈고, 동호회의 첫 모임이 결성되었다. 동호회 당일, 토끼배찌는 청바지와 블라우스 입고 작은 미니 백을 둘렀다. 견과류 향이 나는 향수를 손목에 뿌린 귀 밑을 살살 긁었다. 우드톤 가구로 장식된 오두막 테마의 카페에서 여성들과 수다를 떨었다. 누군가 이 커피가 왜 좋은지, 어디가 어떻게 훌륭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을 이끌었다. 토끼배찌는 공감했고, 커피에 대해 열정적인 사람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토끼배찌 님은 어떠세요? 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잘 모르겠는데, 저는 별로 쓰지 않아서 좋은 거 같아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영화를 보고 마음이 꽂혀 관련 커뮤니티를 찾았다. 나는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바로 감독의 전작부터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것을 봤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오가고 어땠냐는 질문에 나는 (솔직히 짜증이 나서) 몰라요? 안봐서, 라고 대답했다. 이때부터 거의 나는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가 오갔는데 나 말고도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10명이 모였는데 셋이서만 대화를 하는 꼴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무슨 모임이지? 싶어서 기분이 나빴는데 그때를 생각하면서 쓴 소설이다. 지적 허영심을 비판한다기보단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뉴비 배척'이다... 그냥 그때 '아 여기 대부분 사람들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구나.' 라는 분위기를 읽고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도록 노력했다면 만족할만한 모임을 만들 수 있었지 않았을까? 단체 생활은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되니까. 그때 그 사람들을 탓 하는 것이 아닌,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배척하고 이야기를 이어간 적이 분명 있을 거고,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돌아보고 조심하자, 그런 취지에 가깝게 글을 썼다. 반성에 가깝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