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3일장이 끝나간다. 내내 딱딱한 바닥에서 잤더니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골방 안으로 병철 아저씨가 들어왔다. 병철 아저씨는 나한테 같은 말을 세 번째 한다. 영정 사진 잘 챙기고 아빠 염 할때 너무 놀라지 말라고. 나는 예, 라고 말했다. 그러곤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 후 준비했다. 저 멀리, 입구에서 아저씨들끼리 수다스러웠다. 누가 아빠 관을 들지 정하고 있었다. 병철 아저씨가 말했다, 내는 무조건 해요. 아저씨들은 병철 아저씨를 비릿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해한다, 그도 그럴게, 우리 아빠가 죽게 된 게 어찌보면 병철 아저씨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병철 아저씨가 말해준 투자처만 믿고 전재산을 올인했다가 전재산을 잃었다. 너무 큰 스트레스로 인해 헛것과 환청에 시달리고 주위에 전화를 걸며 자꾸 돈을 꿨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슬금슬금 아빠를 멀리했다. 그 때문일까, 아빠는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심장마비로 쓸쓸하게 죽었다. 병철 아저씨는 내내 나타나지 않다가 아빠가 죽으니 장례식장에 나타나서 날 돕겠다고 설치고 있다. 도움은 됐다. 여자 혼자서 이걸 다 어떻게 감당하지 싶었는데 병철 아저씨가 노련하게 일처리를 도왔다. 이제 다 치우고 염 하러 가려는데 휴대폰 진동음이 들렸다. 내 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화면을 보니 할아버지였다. 정확하게는, 아빠의 고모의 남편분. 전화를 받으니 대뜸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 그리 말씀하셨다. 왜?
이제 영정사진도 가지고 나오려는데 뒤늦게 손님이 왔다. 고모 할머니였다. 고모 할머니는 마구 두리번 거리시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치시곤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매서운 손으로 내 뺨을 후려갈겼다. 병철 아저씨가 얼른 달려와 할머니를 말렸다. 뺨을 맞으니 눈앞이 핑 돌았다.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인자했던 고모 할머니의 모습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 다른 아저씨들이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나와 거리를 두었고 할머니는 내게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이 상도덕 없는 년아! 지 애비를 버려? 애비를 버리다 못해 애비를 죽게 만들어? 똥물에 튀겨죽일 년아! 이 지옥갈 년아! 병철 아저씨가 얼른 내게 달려와 듣지 말라 말했다. 할머니는 밖으로 끌려 나가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준혁아. 내가 그때 니 전화를 못받아가꼬, 아이고, 아이고. 나는 산발이 된 할머니의 뒤통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지랄, 할매도 아빠가 돈 달라고 할까봐 피했으면서. 다들 그랬으면서. 왜 나한테만 지랄인데.
화장터에서 화장을 마치고 유골함도 정리했다. 다른 분들은 자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정중히 인사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병철 아저씨가 나에게 왔다. 5만원 몇 장을 내밀면서 우물쭈물하더니 내 어깨를 툭 치론 미안했다, 한 마디 하셨다. 그러곤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꺼림칙했지만 넘겨줬다. 얼른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녁때쯤 병철 아저씨한테 카톡이 왔다. 소고기 사줄테니까 저녁 먹으러 나온나, 이렇게 보내셨다. 이 아저씨는, 이젠 좀 나댄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랄한다고 생각했다. 그걸 생각만 했어야 했는데 실수로 지랄, 이라고 답변해버렸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병철 아저씨를 차단하고 잊어버리려 눈을 감았다. 3일치 잠을 몰아 자야 한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떼깔 고운 소고기보다 느긋하고 깊은 숙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