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여행

by 미미

새벽 5시, 지평선 너머로 옅은 푸른빛이 기어오르는 시간. 검은색 마티즈가 산복도로에서 멈춰서 털털털 소리만 내고 있다. 앞 범퍼는 짓눌린 듯 찌그러져 있었고 헤드라이트 앞에 쓰러진 물체는 역광 때문에 윤곽이 흐리게 나타났다. 검은 마티즈는 들썩거리며 혼자 요란을 피웠다. 차 내부 안에선 남성 두 명이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고 있다. 의견이 분분했다. 고라니다, 아니다 사람이다. 두 남성, 윤세로와 백가로는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윤세로, 백가로는 인터넷 플랫폼 자살카페에서 만났다. 산꼭대기에서 다같이 목을 매기로 하고 인원 5명을 모았는데 막상 모인 인원은 꼴랑 두 명 뿐이었다. 백가로는 황당해 했지만 윤세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은 마티즈를 끌어 백가로를 태웠다. 어렵사리 시동이 들어가고 마티즈에선 털털털 소리가 났다. 비틀거리며 산복도로를 올랐다. 산복도로를 중간 쯤 올랐을 때 윤세로는 마티즈 창문을 모두 열어 시원한 새벽 공기를 한 껏 들이켰다. 백가로가 윤세로를 돌아보자, 윤세로의 팔뚝에 죽죽 그어진 줄무늬 타투가 눈에 띄었다. 윤세로가 입을 열었다. 불곰이랑 같이 살아본 적 있어?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쳐맞고 살았더니 그 인간이 그냥 짐승으로 보여. 어른이 되면 벗어날 줄 알았지. 그런데, 가족이라는게 끊어낼 수 없는 쇠체인 같은 거라 내가 도망치기로 했어. 그냥 어느 순간, 내가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을 때, 뭐 그리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 죽기로 마음먹었다, 윤세로는 그리 말했다. 백가로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굳이 자신의 사연까지 드러내진 않았다. 윤세로도 구태여 묻진 않았다.

여유롭게 산복도로를 오르던 때 둔탁한 덩어리감이 느껴졌다, 차가 잠시 흔들리고 윤세로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두 사람은 얼어 붙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곧 백가로가 정신을 차려 차에서 내리려 한다. 백가로는 사람을 쳤다고 생각했다. 다금하게 차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윤세로가 말했다, 고라니를 쳤다. 백가로가 말했다, 아니다 사람같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다퉜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백가로가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면 이럴 시간에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고요! 윤세로는 딱 잘라 백가로에게 말했다.

"죽으러 가는 놈이 그게 무슨 상관인데?"

백가로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지만 윤세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동을 건 윤세로는 정체모를 시체를 밟고 지나가 그대로 산복도로를 올랐다. 백가로는 패닉한다, 내려줘요, 저 그냥 내려달라고요! 윤세로는 정면을 바라본 채 묻는다. 넌 왜 죽으러 가는데? 꼭대기까지 얼마 안남았으니 솔직하게 말해. 백가로는 입을 들썩거리더니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엄마가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요."

윤세로가 깔깔 웃더니 차를 멈췄다. 이 새끼 존나 애새끼였네. 문을 열어주며 백가로에게 말했다. 엄마가 허락할 때 까진 죽지 마, 병신아. 윤세로는 백가로를 내버려두고 그대로 꼭대기로 올랐다. 백가로는 산복도로를 내려가는 길, 회갈색 아스팔트 도로엔 빨간 핏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왔어, 여기까지. 백가로는 죽음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시체가 있는 곳을 지났다. 진한 핏자국이 남아있고 어딘가로 떠난 듯 핏줄기가 이어졌지만 시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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